김정숙(영남대학교 명예교수)

김정숙(영남대학교 명예교수)

아침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카톡이 온다. 그런데 돌고 있는 메시지들이 대부분 보람있게 잘 살기 위한 충고들이다. 꼭 중고등학교 시절 조·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뇌이던 얘기들과 비슷하다. 선생님이 조회나 종례를 길게 하면 학생들이 신주머니를 빙빙 돌리면서 빨리 일어나서 나가려고 하던 기억이 있다. 먼저 끝난 반 학생들은 창문으로 고개를 드리밀며 제 친구들에게 온갖 신호를 보내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메시지들을 골라서 보내고 받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교훈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살가운 인사는 ‘남사스럽고’, 그럼에도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표시는 하고 싶어서일까?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조·종례 내용에 흔히 떴던 것들 가운데 유독 제외되는 그룹의 메시지가 있다.

가끔 이용하는 공공 목욕시설이 있다. 그 목욕탕은 들어갈 때 신발장에 신을 벗어 두고 실내화로 갈아신고 시설을 이용하게 되어있다. 물론 나갈 때는 그 칸에 다시 실내화를 넣고 간다. 그런데 나갈 적에 실내화를 벗어서 현관에 놓고 자기 신만 신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신발장의 문이 닫히면, 그 실내화가 어디에 들어있었던 건지 모르게 되는데도 말이다. 번호를 모르니까 이 실내화를 넣기 위해서는 많은 신발장을 다 열었다 닫았다 해야 된다. 그것을 관리하는 직원은 과연 장을 하나씩 여닫으면서, 벗어 팽개치고 간 실내화를 보면서 아무 생각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통은 이용객이 다 나간 다음에 하는 신장 정리를 하는데, 그날은 성격이 좀 급한 직원이었는지, 모든 신발장을 열어놓고 벗어놓은 실내화들을 빈칸에 채우고 있었다. “이걸 다 열어야 하지요?”라고 했더니, “네!”라고 대꾸했다. 그 어투에서 벗어놓은 신발을 집어 들면서, ‘이렇게 그냥 두고 가는 사람은 누구람!’이라고 하겠구나 싶었다. 자신이 이용했던 실내화는 번호를 알고 있는 자신이 넣으면 그저 한 번 더 장을 여는 수고밖에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직원은 빈칸을 찾을 때까지 이장 저장을 열어야 한다.

공동 목욕시설에서는 치약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 가운데를 꾹 눌러서 자신이 사용할 만큼의 치약을 빼내 간 치약을 들고, 맨 아래쪽을 눌러 치약을 짜면서 왜 중간을 꾹 눌러서 짤까를 자문한다. 일회용 샴프나 린스 등의 봉지를 찢어서 사용하고는 그 자리에 두고 가기도 한다. 목욕탕에서 자기가 사용한 수건을 그대로 늘어놓고 일어서는 사람도 있다. 내가 돈 내고 들어왔으니 직원은 이걸 치워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글쎄, 직원이 예의까지 뒷바라지 해야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공공장소에서 직원이 매번 손님이 나갈 때마다 치우지는 못한다. 그러면 다음 들어온 사람이 그것을 씻어서 활용하거나, 사용한 수건을 수건통에 갖다 넣고 주변을 정리하며 앉게 된다. 그때 그 사람은 “이런 교양 없는 사람은 누구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런 작은 문제는 신고로 이어지기에는 ‘너무나 작은 예의’의 일탈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안 보는 데서 자기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뒤에서 하는 욕이 내 귀에까지 들어오지 않는다고 욕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안 보이는 욕에 실린 기원은 더 강할 수도 있다. 물론, 안 보이는 욕이 무서워서라기보다 타인이 기뻐함을 생각하면서 깔끔한 매너를 지킬 필요가 있다. 하찮은 문제에 조금만 신경을 쓰면 타인이 좀 더 기쁘게 생활할 수 있다. 우리는 잘 정돈된 데를 들어가면 대우받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사회 전체는 발전된 인상을 준다. 그렇게 흐뭇하고 여유있는 사회가 된다.

김정숙(영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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