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갔지만 꽃샘한파로 두터운 외투와 목도리는 아직 필수품이고 주위에는 여전히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 겨울부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코로나19 바이러스,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사람메타뉴모바이러스(hMPV) 등 호흡기 감염병이 유행 중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호흡기 질환 감염이 많아진 것 같다.
많은 이들이 독감은 감기가 심한 것이고 독감 예방접종을 맞으면 감기도 잘 안 걸린다고 생각하는데 감기와 독감은 완전히 다른 질환이다. 감기는 리노바이러스를 포함한 200여 개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계절에 상관없이 걸리며, 일생동안 우리는 약 200번 이상 감기에 걸린다. 주로 재채기, 코막힘, 콧물, 인후통, 기침, 미열, 두통 및 근육통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만 상기도에 국한되어 합병증을 유발하지 않기에 특별한 치료 없이도 저절로 치유된다, ’감기는 집에서 치료하면 7일이 걸리고, 병원을 방문하면 1주가 걸린다‘는 말이 있는 이유이다.
반면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감염으로 늦가을에서 봄 사이 유행하는 질환이다. 고열과 인후통 등이 갑자기 발생하여 두통, 오한, 몸살, 피로감, 마른기침, 근육통, 위장관 증상이 동반되고 폐렴 같은 합병증을 유발하여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1918년 초여름,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프랑스에 주둔하던 미군 병영에서 감기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보고되었고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급속하게 퍼지면서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 질환이 스페인 독감으로 명명된 것은 1차 대전 참전국들이 적에게 약점이 노출되지 않도록 사실을 숨긴 상태이었고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이 알폰소 13세까지 감염되면서 감염 상황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의사들은 이 질환에 대한 정확한 치료법을 알지 못하여 효과없는 용량의 아스피린, 말라리아 예방약인 퀴닌 등을 처방했으며, 마스크나 격리 등의 방역 수단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고, 병원은 전쟁 부상자로 과부하되어 있었고, 전쟁 후 고국으로 귀환하는 군인들에 의해 독감은 빠르게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약 2년간 지속된 이 유행으로 세계 인구의 1/3 정도가 감염되었으며 사망한 인구는 약 2천500만~5천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약 3천만명으로 추정되는 1차 세계대전의 사상자보다 더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사랑하는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는 스페인독감에서 회복한 것을 기념하여 「스페인독감을 앓은 후의 자화상」을 그렸고, 구스타프 크림트, 에곤 쉴레는 스페인 독감으로 생을 마감했다,
독감 예방접종약은 1945년이 되어서야 개발되었다, 독감은 일부 유전자 변화나 돌연변이를 통한 새로운 유형의 인플루엔자에 의해 발생하므로 매년 접종을 받아야 한다. 접종 후 항체 생성이 2주 이상 걸리므로 유행시기에 앞서 10월~12월 사이 접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독감 유행의 정점은 지났지만 4월~5월까지 일정 수준 이상의 유행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므로 아직까지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경우 특히 65세 이상 노인이나 임산부, 만성질환자, 어린이 등 고위험 군은 반드시 예방접종을 하여야한다.
예방접종과 함께 비누로 올바른 손씻기는 매우 쉽고 효과적인 예방법이다.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잡힌 식사, 실내외 온도차가 크게 나지 않도록 실내 온도 조절하기, 주기적으로 실내 환기하기, 독감 유행 시에는 외출 삼가하기, 많은 이들이 모이는 장소 피하기 등도 중요하다.
감기나 독감에 걸렸을 경우는 제일 중요한 것은 휴식이다. 코가 막힌 경우 가습기와 젖은 수건으로 습도를 유지하고, 인후통이 있을 시에는 따뜻한 물로 목을 축이도록 하자. 하지만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고열, 누런 가래나 콧물, 가슴 통증, 호흡곤란, 귀 또는 목의 통증이 나타난다면, 지체없이 병의원을 방문해야 한다.
안경숙 대구시 동구보건소 진료의사 / 닥터안자연사랑연구소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