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영남대학교 명예교수)
이번 연말 연초에는 국내외에서 대형 여객기 사고들이 잇달았다. 삼대가 함께 세상을 떴다는 등 사고는 애달픈 사연들로 도배된다. 애달픈 사연이 있는 사람만 죽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기묘한 사연을 지니고 생활하고 있는데, 사고가 나면서 그것이 한순간에 드러나는 것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희생당한 사람을 나같이 느끼게 되고, 또 안타까운 마음으로 원인을 조사해서 대책을 세우자고 외친다. 그럼에도 늘 반복되는 녹음테이프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방법 중 하나는 평소에 제대로 된 상식을 쌓아야 하는 점임도 짚고 싶다. 그러면서 이번 비행기 사고들을 통해 비행기와 새에 대한 상식이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새와 비행기는 외형이나 중량이 전혀 다르지만, 그래도 그들은 상호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승무원 2명 외에 탑승객 179명 전원이 목숨을 잃은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 사고는 엔진에 들어간 새의 깃털이 발단이었다. 이 사고 직전에 이탈리아에서는 비행기가 새 떼 때문에 회항했다. 그리고 최근 런던 공항에서는 새 떼와 부딪쳐 심하게 훼손된 비행기 본체를 보게 되었다.
2023년 봄에 제작되어 반향을 일으킨 갯벌 보호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20년간 한국 다큐멘터리계에서 독보적인 길을 걷고 있는 감독의 6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국내외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수상했고, 유수 영화제에 초청된 사람이다. 이 영화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는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의 시간과, 사람, 생명을 찾아 2016년부터 7년 동안 기록했다고 하는데, 갯벌을 지켜 온 사람들의 간절함, 자연과 생명의 숭고함을 아름답게 그린 영화이다. 생태환경은 물론 국가사업의 민낯을 통찰했다는 평을 받는다. 작품은 도요새의 군무를 잊지 못하는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새가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도요새는 시베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오가는 철새이다.
2023년 가을에 베네딕도수녀회 봉헌회원들은 이 영화를 공동관람했다. 어느 고등학교 학생들도 단체로 입장했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에는 새만금개발이 미군 군용비행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철새가 떼지어 날고 있는데 미군 항공기가 철새들을 뚫고 지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비행기 몸체에 부딪친 새들이 비행기에 핏자국을 남기며 우수수 떨어져 죽었다. 시간을 달리하며 같은 장면이 세 번쯤 나온다. 그 장면에서 학생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 순간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fiction(허구성)을 칭하는지, 아니면 Non fiction(사실)인지를 자문했다. 물론, 영화 내내 감독이 7년 동안 실제로 찍었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상영이 끝나고 감독이 직접 질문을 받았다. 나는 여고생들 앞에서 답해야 할 감독을 생각하며, 차마 “그래픽을 끼워 넣었느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운문댐 건설 때의 이야기만 하고 앉았다. 나중에 영화 상영을 추진한 주최 측에 감독에게 비행기 장면이 그래픽이지 않느냐고 묻는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감독으로부터는 아무 답도 받지 못했다. 이런 질문을 한 이가 나뿐이었을까?
비행기는 새 떼가 날고 있는 가운데를 뚫고 비행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럼에도 위험한 것은 사람들에게는 눈으로 본 모습이 머리에 새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도 비행기와 새 떼를 인식한 것은 2007년 한 방송사가 제작한 <에어시티>라는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비행기 착륙을 위해 새 떼의 이동 경로를 바꾸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처럼 포장된 거짓이 때로는 진실보다 더 호소력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정직하고 상식적이어야 한다.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는 지혜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