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이어가는 소중한 의문문으로
소원했던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자
“잘 지내지?”라고

금동지 전 경남대 교수 / 경남대 고운학연구소 연구원

다시 3월이다. 정년퇴임을 했는데도 개학 시기가 되니 기분이 묘하다. 지금쯤은 새로운 교재를 붙들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유익한 수업을 할 것인가 이런저런 궁리로 바빠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한가한 현실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인 모양이다. 출석부에 기재된 학과나 학년을 보며 전공과 영어를 어떻게 잘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PPT를 만들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특별한 약속도 없고 몰아 보기를 해야 할 밀린 드라마도 없는 봄비 추적추적 내리는 이른 아침이다. 늦잠에도 익숙하지 않은지라 무엇을 할지 한참을 방황하다 첫 학기 첫 수업을 하던 그 시기로 마음을 보내보았다.

첫 시간, 서로 인사를 나누고 교재와 평가, 수업 방식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두 시간 연속 강의이니 아이들이 아무리 듣고 싶어도 “수업 끝”을 외치기엔 남은 시간이 과하게 많다. 그럴 때 내가 즐겨 쓰는 방법이 있다.

영어 회화 수업이니 영어로 대화를 해보자고 한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수업의 궁극적 목표이니 명분도 충분하다. 그런데 대화라는 것이 만나서 대뜸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니 물어보자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혹은 “점심 드셨나요?”라는 상투적인 질문이라도 무뚝뚝하게 고개만 끄덕이며 지나치는 사람보다는 훨씬 다정하고 친근하게 느껴져서, 좋은 인상과 좋은 관계의 기회가 많아진다. 그런 입장에서 질문과 대답을 해보자고 유도한다.

그러면서 단답형으로 대답이 가능한 질문 만들기로 시작해본다. 즉 “Yes”, “No”로 수동적인 대답이 가능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연습이 되면 서술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의문사로 시작하는 의문문’ 즉 ‘Wh-Question’을 만들게 한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 대신 시간과 장소, 행위는 물론이고 이유와 방법에 대해 질문과 대답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 파트너도 수시로 바꿔준다. 조금 전에 한 질문도 파트너가 달라지면 대답이 달라져서 대화의 방향 또한 바뀌게 된다. 어떤 파트너와는 주말 동안의 스포츠 게임에 대해서 열을 올리고, 어떤 파트너와는 동아리 활동에 대한 추천이나 선배와의 관계에 대해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첫 시간부터 다양한 급우들과 질문과 대답을 하다 보면 서먹서먹함도 사라지고 조금씩 갖게 된 상대방에 대한 정보로 친한 사이라도 된 듯 활발한 얘기꽃이 핀다. 영어가 모자라면 ‘콩글리시’나 ‘지역 사투리’도 허용되어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진다. 그러다 보면 수업 후 감사 인사도 씩씩하며, 서로 웃으며 손을 흔들고 다음 수업을 기약하는 모습도 친밀하다.

그런 과거의 시간에서 돌아와, 현재의 나의 일상에서 ‘의문문 만들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생각해보았다. 수업의 순서대로, “네”“아니오”의 대답을 요구하는 의문문과 “왜”나 “어떻게”를 사용하는 의문문으로 나아가 보았다. 상대의 의도나 진심을 알아보는 “어때?” 대신 “했는지? 안 했는지?” 혹은 “할까? 말까?”에 머물러 있는 나의 의문문에 대해서 반성이 되었다.

그러면서 ‘의문문 만들기’ 자체에도 의문이 들었다. 사사건건 다 알고 싶어서 만드는 의문문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궁금하다고 다 물어보고 마음 내킨다고 다 물어보는 솔직함이 필요한 나이는 아니므로. 때론 못 본 척도, 들리지 않는 척도 할 수 있어야 평화로운 관계가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럼에도 따뜻하고 다정한 질문 만들기는 위로가 될 것 같아, 오늘 간편한 카톡으로 소원했던 친구에게 의문문을 만들어보려 한다. “잘 지내지?”라고. 인연을 이어가는 소중한 의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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