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온 딸 가족 기쁘게 맞이하니
여덟 살 손자의 ‘벚꽃’시로 응답받아
소통하는 마음은 ‘좋은 경치’가 됐네

금동지 전 경남대 교수 / 경남대 고운학연구소 연구원

며칠 전 자려고 누웠는데, 친구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정채봉 시인의 「오늘」이란 시가 적혀 있었다.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새소리에 무심히 응대하지 않았네~~”라는. 시 낭송 모임의 회원인 그녀가 요즈음 배우는 시라고 했다. 새소리에 무심했고, 하늘의 별도 세지 않았고, 친구의 신발도 챙겨주지 못해서 내가 나를 슬프게 했다는 그 시인의 마음이 친구의 마음을 통해 나에게로 왔다.

응대이든 응답이든 받는 쪽의 기쁨이 더 크겠지만, 시인과 친구 그리고 나는 응답하는 사람에게 주목했다. 사람은 물론이고 자연에게도 응답하며 살아보자, 그러면서 행복해져 보자고 느낀 것이다. 서로에게 응답하고 서로의 애환을 보듬던 「응답하라 1988」 시리즈의 쌍문동 사람들이나 그들의 살맛나는 세상에 응답했던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세상이 되었다. 서로에게 응답은커녕 스마트폰에만 응답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마침 딸과 손자가 사위보다 이틀 먼저 와서 우리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모든 일정을 비우고 사랑스러운 이 둘의 나들이에 응답하기로 했다. 학부모가 되었어도 막무가내로 어리광을 피울 수 있고,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곳이 친정 아니던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시기였다. 막 피기 시작한 복사꽃은 보너스였다. 벚꽃 터널 아래 드라이브와 산책을 즐겼다. 우리야 연신 감탄과 환호를 올렸지만, 이제 막 8살이 된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자연이 뭐 그리 아름다울 일이며, 응답하고 감탄할 일이겠나? 별 감흥 없는 녀석에게도 동참을 강요해보기로 했다.

먼저 증조할머니께 응답하기로 시작해 보았다. 기차에서 그린 그림을 증조할머니께 선물로 드리며 그림 뒤에 마음도 담자면서 봄에 대한 글을 적어달라고 응답을 강요한 것이다. 녀석은 우리가 수다를 떠는 동안 뭔가를 적어왔다. 「행복한 봄」이 제목이었다. “홍덕희 할머니께”로 시작하여, “오감으로 봄을 느끼고/ 편안한 봄을 느끼다/ 조금 쉬어도 좋다/ 그것이 행복하고 편안한 봄이다/ 너무 달리지 말라/ 이제 쉬어도 괜찮을 봄이다.” 우리는 모두 놀랐고 박수로 그의 응답을 칭찬했다. 증손자의 시에 감동된 증조할머니도 시화로 만들어진 그의 응답을 선물로 고이 챙겼다.

우리는 손자의 응답하기에 재미를 붙였다. 이틀의 시간을 보낸 후에 증조할머니가 받은 선물을 나도 받고 싶다고 떼를 써보았다. 헤어지기 전날 저녁이었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싫지는 않은지 한참 후 선물을 들고 왔다. 「벚꽃」이 제목인 이 시는 “벚꽃이 만개했다/ 하늘을 빽빽하게 채우며/ 좋은 경치를 만든다/ 마음속의 꽃도 좋은 일로 채우면/ 좋은 마음이 된다./ ‘마음’은 ‘경치’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시 밑에는 빨간색 하트 모양을 그리고 등호부호를 넣고 꽃잎이 3장 그려져 있었다. 시화였다. ‘마음이 경치’라는 그 구절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늘을 채운 벚꽃 터널에 응답하고 떼쓰는 할머니의 요청에 응답하고 그렇게 자연과 사람에 응답해준 손자가 고맙고도 사랑스러웠다. 예쁘고 좋은 꽃으로 가득한 내 마음이 되도록, 좋은 마음의 경치를 손자가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봄나들이 온 딸과 손자에게 응답하고 세상에 둘도 없을 꽃시로 응답받은 아름다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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