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지만
단칼에 잘린 60년 인연엔 마음 저려
모든 ‘연’ 소중히 여겨지길 바라본다

금동지 전 경남대 교수 / 경남대 고운학연구소 연구원

바람 부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코를 찔찔 흘리며 만났던 7살 어린이들은 그 나이 앞에 숫자 6을 추가한 지금에도 만나기만 하면 얼굴 가득 환한 미소는 물론이고 “야”로 서로를 불러가며 잠시 떨어져 있었던 근황 나누기에 순서를 다툰다. 나는 그런 철없는 남자들을 여럿 알고 있고 자주 만나고 있다. 남편과 그의 고향 친구들은 각자의 아내를 이 구성원에 추가했을 뿐 여전히 과거의 한 시점에 머물러 진행형으로 살고 있다. 이들의 끈끈한 우정은 수없이 많은 기억과 추억의 순간들로 깊어지고 만나는 모임의 회수만큼 확장되고 있다.

전국으로 흩어져 살다 보니 분기별로 모임을 하며, 길이 멀다는 핑계로 아직도 누군가의 집에서 하루를 자고 돌아오는 1박 2일 모임도 예사이다. 요즘 시절에 누가 친구 집에서 1박 2일을 하느냐고 간도 크다고 하지만 으레 그래왔으니 이 모임에선 별로 큰일도 되지 않는다. 20여 년 전,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자랑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남편의 증명사진 꾸러미 속에서 중년의 남자 10명이 찍힌 사진 한 장이 불쑥 튀어 나왔다. 다들 얼마나 풋풋하고 젊게 보이는지 20년 세월의 야속함이 저절로 느껴졌다. 그중 세 명은 사망과 이혼 등의 이유로 퇴장을 해서 본 모임에는 5명만 참가 중이다.

번외 선수들도 두 명 있다. 미국에서 경제학 교수로 은퇴했지만 소심하고 삐지기를 잘해서 삐돌이로 불리던 친구는 어쩌다 조상을 뵈러 한국에 나오면 전체 소집이 번개처럼 이루어진다. 아직도 미혼인 또 다른 한 친구는 이른 새벽 미국에서 우리 카톡방에 댓글을 달며 존재를 확인시킨다. 단체 여행이라도 가면 날짜 맞추어 베트남으로도, 일본으로도 합류하러 달려오니 미국에서 산다뿐이지 마음은 늘 이곳에 있다. 자격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 두 준회원을 생각하면 인연의 덧셈인 양 훈훈하고 뜨듯해진다.

하여간 이 남자들은 철이 들어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면서, 만나기만 하면 영천과 대구를 오가던 기차 통학 때의 무용담으로 신이 나고, 친구 집 부엌 시렁 위에 올려둔 보리밥을 꺼내 먹던 얘기, 발 냄새로 친구 누나한테 쫓겨나던 시절로 돌아간다. 만날 때마다 예전엔 몰랐던 일을 하나씩 알게 되고 어떨 땐 수십 년 된 오해가 풀리는 일도 있으니 보는 아내들로서는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다. 시간이 얼마나 더 걸려야 얽혀있는 관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다 실타래 풀리듯 할까 싶은 것이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던 모임에 변수가 생기고 말았다. 서울, 대전, 대구, 포항에서 달려와야 하니 그 어디를 만남의 장소로 정해도 누군가에게는 엄청나게 먼 거리가 된다. 분기별로 모인다고 해도 그냥 밥만 먹고 수다만 떨기에는 너무 귀한 만남인지라 같이 등산을 하기도 하고 둘레길을 걷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는데, 장거리 운전도 어렵고 건강도 따르지 않는다며 한 부부가 자진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의논도 대화도 없이 60년 인연을 싹둑 잘라 통보하는 일방적 행동에 남은 사람들은 당황했고 황당했다. 그렇게 한칼에 잘린 인연에 아팠고 허탈했고 실망으로 마음이 저렸다. 더하기는 즐겁고 훈훈하기만 하더니 그 인연의 뺄셈에는 이런 아픔이 따르는가 싶어 속이 쓰렸다. 나의 인연이 된 남편의 인연이 깨어지는데 내 마음이 힘든데, 당사자인 남편과 그의 친구들은 어떻겠나 싶어, 긴 세월로 엮은 매듭의 잘린 단면에도 말을 아끼고 말았다.

“우리 인연 영원히!”는 건배사이고 슬로건이고 기원일 뿐이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것이 인연 아니겠나! 나도 어떤 인연엔 안녕을 고하고 어떤 인연엔 선물인 듯 고맙게 맞아들이지 않는가! 어쨌든 남아있는 모든 나의 인연에 더이상 뺄셈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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