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국 시사평론가, 전 국제신문 서울취재본부장
민주주의는 오랜 군사독재와 고문, 폭력의 시대를 이겨낸 국민의 헌신으로 얻은 값진 성과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의 정치는 통합보다 분열을, 포용보다 보복을 택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켜왔다.
이번에 선출된 새로운 대통령은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수습하고 다시 ‘국가다운 국가’로 복원기켜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안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페루를 연상케할 정도로 추락한 국가신뢰도를 끌어올리고, 입법·사법·행정 3권 분립이 제자리를 찾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권력기관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당선 직후 대통령 직무가 바로 시작되는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도 인수위 없는 국정 출발이 위험하다. 그만큼 명확한 국가 비전과 일관된 정책 방향, 검증된 인재가 절실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첫 인사부터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정권은 금세 신뢰를 잃게된다. 지연·학연·정치 보은인사로 낙하산을 투하해 공공기관을 마비시키는 일이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공공기관은 논공행상의 자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의 현장이다.
정치보복은 절대로 지양해야 한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임기내내 정치보복을 일삼았던 문재인 정권을 답습해서는 안된다. 무리한 수사와 정적 제거는 결국 또 다른 분열을 낳는다. 전임 대통령의 정책이나 유산도 괜찮다면 이어가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나 대통령실을 옮기고,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는 데 집착하는 모습은 결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대통령은 보복의 칼이 아니라 통합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대선기간에는 국민의 절반만 바라봤을지 몰라도, 대통령이 된 이상 전 국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세계는 통상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고,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1% 미만으로 떨어질 위기다.
경제 살리기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분배냐 성장이냐로 오락가락하지 말고, 기업이 자유롭게 뛰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과잉 규제, 낡은 노사 관행, 반기업 정서는 혁신의 싹을 자르며, 이는 고용 위기로 되돌아온다.
재정 건전성도 위기다. 100조 원을 넘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지속 가능성을 해친다. 복지 확대와 포퓰리즘은 다르다. 민생을 생각하되, 실사구시적 접근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정치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범사노복 선념기한(凡使奴僕 先念飢寒·노복을 부릴때는 그들의 굶주림과 추위를 생각하라)’이라는 말처럼, 국민의 고단함을 먼저 살피는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또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쓴소리 특보’다. 중국 당 태종의 곁에는 위징이라는 ‘양신(良臣)’이 있었다. 위징의 쓴소리를 당 태종은 경청했고, 그 덕분에 당나라는 최고의 안정기와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대통령이 되면 대부분의 참모들은 듣기 좋은 말만 한다.
그래서 권력자는 현실과 괴리된 판단을 하게 되고, 국민과 멀어진다. 직전 대통령이 그랬다. 그래서 일정 임기를 보장하는 장관급 쓴소리 특보를 두어, 권력 내부에서도 견제와 반성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할 것을 제안한다.
새 대통령에게 대선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1년 후 지방선거는 새 정부의 첫 번째 성적표가 될 것이다. 정권 초반 1년은 신뢰와 동력을 얻을 수 있는 결정적 시기다. 그러나 반대편을 적으로 돌리고, 협치를 거부한 채 정국을 독주한다면 지방선거는 참패로 이어지고, 대통령은 1년짜리로 전락할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듯, 초심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러나 국민은 정직함과 일관성 있는 지도자를 기억한다.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실천과 결과로 말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국민은 지켜본다. 통합과 책임, 실용과 상식의 정치를 보여준다면 지금 평가와 무관하게 박수를 받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반면 복수와 독주를 선택한다면, 역사와 국민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진정한 대통령의 시간이다.
김경국 시사평론가, 전 국제신문 서울취재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