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변호사, 헌법재판관 후보가 웬말
‘보은 인사’ 수준을 넘어선 이해충돌
지명 추진 철회 후 공정성 마련해야
정치평론가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가 본격화되면서 정국은 다시금 술렁이고 있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변호사를 민정수석에 앉힌 것까지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민정수석실 산하에 자신을 수년간 변호해온 변호사들을 줄줄이 비서관으로 임명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집사 변호사’를 헌법재판관 후보에까지 올린 상황은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오영준 위광하 판사와 함께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압축된 이승엽 변호사는 이재명 대통령의 굵직한 재판을 총괄해온 인물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등 형사 사건에서 이 대통령의 법률적 방패 역할을 해온 그가, 이제는 헌법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보은 인사’ 수준을 넘어선 이해충돌이다. 삼권분립이 엄중하게 지켜져야할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의 형사재판 사건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법률대리인이 헌법재판관을 맡는다는 것은 헌법기관의 공정성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피할 수 없다.
더구나, 이승엽 변호사는 단순한 법률 조언자를 넘어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전략을 사실상 총괄해온 ‘집사 변호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인물을 헌법재판관 자리에 앉힌다는 것은, 혹여 있을 헌법소원이나 권한쟁의, 혹은 대통령 관련 사건이 헌재에 올라갔을 때 ‘방탄 판결’을 염두에 둔 포석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어떤 것이 이해충돌인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대통령 사건을 맡은 분들은 공직에 나가면 안 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도 말했다.
이같은 반응은 단순한 무지라기보다, 고의적 외면 혹은 오만이다. 국민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당장 현직 대통령 재판 중단 여부와 관련한 헌법 84조 해석을 두고 헌법소원이 청구된다면 헌법재판소가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 그래도 이해충돌이 아닌가.
이런 행위야말로 헌법정신에 대한 심대한 도전일뿐만 아니라, 국정농단이다.
심지어 야당인 국민의힘에서는 변호사비를 공직으로 지급하는, 말하자면 변호사비 대납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야당의 정치 공세로 볼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사적 인연이 국가 최고의 헌법기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경고신호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인터뷰에서 “가깝다고 한 자리씩 주면 최순실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발언이 이제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대통령의 재판을 수십 차례 도맡아온 변호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추천한다는 것은, 국정을 사유화하고 헌법기관을 사익 방어 도구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게다가 민정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법률비서관 등 민정수석실 산하의 요직에 자신을 변호했던 인물들을 줄줄이 발탁했다. 이쯤 되면, 변호사비를 공직으로 보상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이미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 사건 등을 변호했던 변호인들은 줄줄이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다. 야당 일각에서 “변호사비를 뱃지와 관직으로 대신 받은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장경태 의원이 발의한 ‘국민주권위원회 설치법’은 헌법재판소 결정에까지 일반 시민이 관여토록 하겠다는 취지인데, 이는 헌재 장악의 제도화 시도처럼 보인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집사 변호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다면, 이는 마지막 퍼즐 조각 하나를 맞추는 행위로 비칠 수 밖에 없다.
국민은 권력의 사유화를 절대 반대한다. 이런식의 인사가 이어지면, 국민들은 헌법재판소를 대통령 개인의 방패막이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이 진정 ‘사법개혁’을 말하고자 한다면, 집사 변호사를 헌재에 보낼 것이 아니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헌재의 독립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통령실은 이승엽 변호사의 지명 추진을 즉각 철회하고, 인사 시스템의 공정성과 국민 눈높이에 맞춘 검증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정권은 임기 초부터 스스로 ‘이재명 1인 체제’를 선언하는 꼴이 될 것이다.
김경국 정치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