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에 둘러싸인 나의 공간에서
보호하고 세상과 관계 맺도록 해주는
벽과 창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금동지 전 경남대 교수 / 경남대 고운학연구소 연구원

요즈음 내가 책을 보거나 글을 쓰기 위해 즐겨 앉는 자리는 식탁 옆 작은 이동식 테이블 앞이다. 나는 이 이동식 작은 테이블을 온 집안 곳곳으로 옮겨 놓으며, 철마다 특정 장소를 나의 시절 인연으로 택하고 있는데, 봄이 되면서부터는 밖의 잔디와 꽃이 보이는 이곳을 나의 장소로 택했다. 조리대와 싱크대를 등지고 식탁에 앉듯 넓은 창을 마주하여 앉으면 비록 부엌 공간을 벗어나진 못했어도 아늑한 카페에 앉은 듯 편안하다.

다른 집들과 경계를 이루는 돌담도 보이고 길도 보이는데,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이웃들이 지나가는 것을 관심과 애정으로 가만히 바라볼 수도 있다. 우리 마당은 물론 다른 집 정원의 꽃과 나무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니 한옥은 아니어도 차경(借景)의 매력까지 느낄 수 있어서 덤이라면 덤이다. 꽤 넓은 베란다가 부엌 앞에 위치해 나름의 분리감도 충분히 느끼면서 창이라는 뚫린 공간을 통해 세상과도 이어져 있는 듯해 외롭지도 않다.

이렇게 벽과 창이 서로 보완하여, 보호도 하고 세상과 관계도 맺도록 해주니, 이를 인용하여 건축의 발전사를 설명하는 유현준 교수가 생각났다.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던 건축학이나 미학이 인문학과 손을 잡으며 학문 간의 경계도 흐려지고 진입 장벽도 낮아졌을 때, 화려한 입담과 흥미로운 주제로 그 선봉에서 건축의 문외한들을 이끌던 분인지라, 평소에도 즐겨 그의 유튜브를 애독하던 참이었다.

동굴로 시작된 인간의 공간이 벽과 문, 창문, 계단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수직적 이동까지 원활하게 만든 엘리베이터에 이르기까지 발전하고 확장되어온 주거공간과 주거방식의 진화를 설명해주었고, 특히 서울에서 천만이나 되는 인구가 그나마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도 벽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가능하게 하고 각각의 존재를 보호해주기도 하는 그 고마운 벽을, 우리의 실제 삶에서는, 힘들게 하여 없애버리고 싶은 해로운 벽으로 더 자주 만난다. 넘을 수 없는 벽, 소통할 수 없는 벽, 비밀을 감추어두는 벽, 심지어 우리를 가두어 두기도 하는 인정머리 없는 벽으로 만나 좌절도 하고 부딪혀 부서지기도 하니 말이다

남녀를 차별하고 노소(老少)를 갈라놓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권력을 휘두르는 자와 휘둘리는 자, 이렇게 양편을 가르기만 하던 벽도, 문과 창으로 그 벽을 뚫으면, 서로 드나들 수도 있고 소통도 가능해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문 이편에선 힘을 가진 자로, 문 저편에선 고개 숙인 자의 입장이 되어보면서 내가 늘 벽의 안쪽 혹은 바깥쪽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벽 앞에서 좌절하기만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벽을 내가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인간이나 동물 등 창조물의 평가를 맡게 된 모모스 신이 인간에게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을 달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았다 하니, 예나 지금이나 오리무중인 인간의 마음을 창문이라도 달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은 동일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2학년인 나의 손자 또한 이렇게 독후감에 쓰고 있었다. 벽은 보호하고 문은 연결하니 벽과 문이 있으면 방이 되고 방 같은 사람은 자기에겐 부모이고 자신도 그런 방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손자는 벽에 문을 달고 싶었고, 모모스 신은 벽처럼 닫힌 인간의 가슴에 창문을 달고 싶었던 모양이다.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창넓은 나의 공간에서 벽과 창의 생각으로 오래 같은 페이지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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