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권력은 통제되지 않으면
정권을 갉아먹는다
투명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

김경국정치평론가
김경국
정치평론가

예외란 없었다.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달라져도, ‘문고리 권력’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비선 실세, 또는 공식 실세의 움직임에 따라 정권의 건강도는 출렁였고, 심하면 정권의 흥망이 결정되기도 했다. 문고리 권력이 잘해서 정권이 흥한 사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못해서 망한’ 정권은 수두룩하다. 역사와 현실이 이 교훈을 반복적으로 증명해 왔다.

왕조시대에도 문고리 권력은 있었다. 궁중 내시들은 왕의 곁을 지키며 ‘왕의 의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집행했다. 조선 후기 국정이 무너질 때 등장했던 내시의 국정개입은 권력 말기 혼란의 상징이었다. 중국 후한 말의 십상시(十常侍)는 황제를 배후에서 조종하며 부패의 극치를 보여주었고, 결국 나라를 기울게 만든 주범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도 문고리 권력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노무현 정권의 노건평, 이명박 정부의 이상득, 박근혜 정부의 ‘문고리 3인방’은 모두 정권의 뒤편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정을 흔들었다. 이명박 정권 초, ‘만사형(兄)통’이라는 말은 대통령의 형이 모든 일을 통제한다는 세간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대통령의 형’은 결국은 정권에 짐이 되었고, 그 무게는 정권 말기로 갈수록 커졌다.

그리고 지금, 이재명 정부에도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다. ‘만사현통’.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30년 동지인 김현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을 중심으로 한 권력 집중 현상을 두고 보수 언론이 붙인 별칭이다. ‘형’에서 ‘현’으로 바뀌었을 뿐, 그 구조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심지어 그 등장은 더 빠르고, 더 비밀스럽다.

김현지는 성남 시민운동 시절부터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한 최측근이다. 대학교 졸업 직후부터 그의 곁을 지켜온 ‘정치적 동지’이자 ‘그림자 참모’다. 성남시장, 경기지사, 국회의원 시절을 모두 함께했다. 대통령과 특수관계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이제 대통령실의 예산, 인사, 운영을 총괄하는 총무비서관 자리에 올라 있다. 문제는 이 권한이 단지 대통령실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 공천 검증과 정무 현안, 사법리스크 대응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 비서관은 얼굴이 거의 공개된 적이 없으며, 출신 대학과 나이도 확인되지 않았다. 총무비서관이라는 고위 공직에 임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신상과 활동이 베일에 가려진 인물은 유례가 드물다. 그녀와 함께 대통령의 또 다른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정진상 전 실장 역시 마찬가지다. 극도로 은둔적인 방식으로 대통령과 정치를 함께해왔다.

비공개와 침묵, 철저한 그림자 행보는 오히려 더 큰 의문과 불안을 낳는다. 정권 초기부터 “권력 서열 1위는 김현지”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돈다는 점은 결코 정상적인 권력 구조라고 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측근이 국정운영에 관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권력의 중추에 서서 실명도, 얼굴도, 검증도 없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건 투명한 정부의 길이 아니다.

정권 초기 인사 난맥의 배경에도 김현지의 과도한 개입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모든 정권에서 준비했던 ‘인사 배제 항목’을 만들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실세’들의 입김때문이라는 말들이 나온다.

수백 명의 대통령실 인선이 그녀의 결재로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는, ‘그림자 권력’이 ‘실질 권력’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정무, 사법, 정책까지 비선 실세의 손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정권의 결말을 낙관할 수 없다.

문고리 권력은 통제되지 않으면 정권을 갉아먹는다. 역사가 던지는 경고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 이상 지방자치단체장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가 원수이며 헌법기관이다. 그렇다면 국정의 중심은 오로지 공적 검증을 받은 인물들과 시스템에 있어야 한다. 그림자에 가려진 권력은 언제나 독이 되어 돌아온다.

권력서열 1,2위로 불리는 김현지나 정진상을 계속 활용하려면 본인들에 대한 공개부터 필요하다.

문고리 권력에 대한 투명한 감시와 견제가 있어야 한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김경국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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