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는 철용이 들고 도망갔지만
공범 은명이 7천만 원 전액 책임져
공동불법행위자의 각자 전부책임

권용덕 로앤컨설팅 대표변호사
권용덕
로앤컨설팅 대표변호사

몇 달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의 제목이라서 이제는 최신 유행에서 한 발짝 멀어진 문구인 것 같지만, ‘폭싹 속았수다’라는 제주 방언이 꽤 유명하던 시기가 있었다. 필자는 이 뜻 모를 제목의 드라마가 백상예술대상 극본상을 수상하였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서 근래에 뒤늦게 작품을 접하였는데,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다만 법률가로서, 그리고 이 지면을 채우는 칼럼 필진으로서의 직업병이랄까. 16부작 드라마를 보면서 필자는 내내 머릿속으로 ‘이 유명 작품의 내용에서는 무슨 부분을 따서 칼럼 주제로 삼아볼까’하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필자의 기억상 시리즈가 중반부로 접어들던 즈음에 있었던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이번 주 시사법률의 주제를 찾았다. ‘공동불법행위자의 각자 전부책임’이라는 내용이다. 이미 종영한 지 몇 달 된 작품이고, 작품의 흐름 상 딱히 비밀스러운 내용은 아니라서, 스포일러 주의 문구는 없어도 될 것 같다.

양관식의 아들 은명은 친구 철용과 함께 인생역전 대박을 꿈꾸며 전당포를 개업하였는데, 손님이 맡겨놓은 분청사기를 그만 철용이 들고 도망가 버렸다. 가격이 7천만 원이었다는데, 극 중 시기가 대략 90년대 후반쯤이었을 테니 지금 돈으로는 억 단위 가격의 물건이었을 테다. 그런데 행방불명된 철용을 대신해서 은명이 7천만 원 전액을 책임졌다. 아마 공범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극 중 은명은 결백을 주장하는데, 결백하냐 아니냐 하는 것이 작품 진행상 아무 상관이 없는 내용이므로 이 글에서는 공범이었다는 것을 전제로 쓴다. 또한 극 중 7천만 원의 배상은 일종의 형사합의금으로 지불된 모양새였으나, 아마 민형사 합의금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것이었을테니 이 글에서는 민사상 책임에 관해서만 쓴다.)

도자기는 철용이 들고 도망갔지만, 공범인 은명이 7천만 원 전액에 대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이것이 공동불법행위자의 각자 전부책임이다. 공동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혔다면, 그 피해액 전부에 대해 잘못한 사람 하나하나가 전액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피해자는 중복 내지 초과 이익을 얻을 수는 없다. 따라서 철용도 은명도 각자 7천만 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지만, 은명이 7천만원을 배상하면 피해자는 철용에게는 더는 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 은명이 6천만 원을 배상한 경우 피해자는 은명 혹은 철용에게 1천만원을 더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은명이 7천만 원 전부를 배상한 경우, 은명은 그 중 절반을 공범인 철용에게 구상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철용에게 그렇게 구상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은명이 피해자의 전액 배상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다.

이렇게 법이 규정되어 있는 이유는, 쉽게 예상하시겠지만, 피해자를 철저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범인들 가운데 누군가가 도망가더라도 피해자는 남은 공범을 상대로 전액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아들 대신 배상금을 마련한 은명이 부모님이여, 그야말로 폭싹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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