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신문 정치면이나 사회면에 잘 등장하는 일이 없는 ‘대법원장’이라는 직책이 근래 수시로 지면에 오르내리는 것 같다. 기존에는 굳이 오르내린다면 ‘이번에 대법원장 후보가 누구인데 인사청문회 결과는 어떠하다’라는 기사이거나, 혹은 ‘이번에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통해 무슨 판결이 선고되었다’라는 기사에서 괄호 안에 재판장이 대법원장으로 표시된다든가 하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경우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이다. 여당에서 대법원장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아서 그런 것이리라. 현역 정치인 혹은 정치인 출신이 임명되는 일이
온 나라를 꿰뚫는 거대한 법률상 시사 이슈가 딱히 없었던 지난 일주일로 생각되기에,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 가끔 필자의 사무실로 문의가 오곤 하는 ‘형사합의’에 관한 이야기다.범죄가 발생한다거나 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를 하는 경우들이 있다(물론 합의가 최종 타결되지 않고 결렬되는 경우들이 더 많다). 이때 변호사 등 법률지식이 있는 사람을 끼지 않고 합의를 하면 가끔 놓치는 것이 있는데, 범죄 피해로 인한 합의에는 형사합의와 민사합의의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구분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그냥 합의서를
‘내란재판 특별재판부(전담재판부)’라는 것을 여당에서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여야가 그 찬반을 두고 갈등 상황에 빠졌다. 복잡한 헌법적 쟁점이 관여하는 문제인 까닭에 헌법을 공부해보았다거나 하지 않았다면 무슨 내용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지 쉽게 알기가 힘들다. 그래서 오늘은 관련 내용을 한 번 적어본다.대한민국 헌법은 우리나라의 사법권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각급 하급법원들에 귀속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그 법원은 법관들로 구성된다고 규정하였다. 사법권이란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은 법관으로 구성
‘비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부터 떠오르시는가? 전국시대 법가 사상가 한비자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이고, 세계에서 가장 큰 신용카드 회사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할 것은 외국 나갈 때 필요한 그 ‘비자’다. 신용카드 회사 이름과 영문 철자는 ‘visa’로 동일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다. 한국에서는 ‘사증(簽證)’이라는 한자어도 같은 뜻으로 함께 사용한다.개별 국가는 다른 나라 국민이 자국 영토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거나 거절할 권리를 보유한다. 당연히 허락을 해 주느냐 마느냐는 해당
지난번 안동에서 학부모가 시험지를 훔칠 목적으로 학교에 몰래 들어갔다가 잡혔던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이 지면에서 건조물침입죄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당시 실제 사건은 한밤중에 몰래 들어갔다가 들통난 것이었기 때문에 침입죄의 성립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가정적으로 ‘주인의 승낙을 받아서 들어간 것이었지만 사실 주인이 모르는 범죄의 목적이 있었던 경우라면 침입죄가 성립하는가’에 관해서 이야기했었고, 대법원 판결은 과거에는 ‘범죄 목적이었음을 주인이 알았더라면 출입을 불허했을 것이므로 침입죄가 성립한다’였는데, 전원합의체 판결
‘노란봉투법’이 며칠 전 국회를 통과하였다. 귀엽고 쉬운 별명인 노란봉투법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기는 하나 실제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노동조합의 결성과 노동쟁의의 행사를 국민의 천부인권으로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세부적 내용을 규정하기 위해 이러한 노동관계법이 반백 년도 더 이전부터 시행되어 오고 있다.)이런 긴 이름의 개정법률안이 노란봉투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은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쌍용차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노조의 쟁의행위로 인해
길 건너 시장에서 어물전을 하던 광수엄마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20년쯤 전에 일수꾼에게서 돈을 좀 빌렸다. 처음에는 매주 차근차근 원리금을 잘 갚아나갔지만 어쩌다 보니 밀리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일수꾼과도 연락이 끊어졌다. 광수엄마는 고향을 떠나 먼 타지에서 새로 터전을 꾸렸는데, 일수꾼은 광수엄마를 찾아내지 못해서 빚독촉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십여 년이 흘렀다.십여 년 후 일수꾼은 광수엄마에게 못 받은 돈, 이른바 악성 채권을 채권추심업체에 헐값에 팔았다. 추심업체는 정보력을 동원하여 백방으로 수소문하다
면회 온 애인으로부터 기다리다 지쳐 다른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말을 들은 죄수는 탈옥을 결심한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으로 감옥 안에서 땅굴을 파기 시작하고, 결국 태풍이 몰아치던 날 밤 아무도 몰래 탈옥에 성공하여 다음 날 아침 기쁜 마음으로 길에서 조간신문을 펼쳐 든다. 아뿔싸, 이번 광복절을 맞이하여 특별사면 대상자 목록이 발표되었는데 그 안에 내 이름이 있다?! 죄수는 이제 아무도 몰래 다시 감옥 안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래서 무사히 광복절 특사로 출소해야만 한다. 20년도 넘은 충무로 영화인 『광복절 특사』의 내용이다.이렇게
보유 주식이 없다고 공직자 재산신고를 했던 집권여당의 현직 4선 의원이자 국회 법사위 위원장이 보좌관 명의 계좌로 주식거래를 하다가 들켰다. 본인은 실수로 보좌관의 휴대전화기를 들고 왔다가 호기심에 증권 앱을 열어본 것일 뿐이라고 변소하고 있으니, 그 말이 맞을지 두고 볼 일이다. 이렇듯 주식을 보유하고 있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나름 중요한 문제인데, 주식 보유와 관련한 또 하나의 중요한 실시간 이슈가 더 있기에 이 지면에 소개해 본다. 물론 이미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다루고 있는 내용이기는 하다.대한민국 소득세법은 세금 납부 의무가
친아버지가 멀쩡한 아들을 며느리와 손주들 앞에서 사제 총기로 살해하는 온 세상이 깜짝 놀랄 사건이 있었다. 필자도 처음에 기사를 보고는 오보일 것이라 생각했었고,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는다. 너무나도 슬픈 일을 당한 가족들에게 삼가 위로의 말을 전한다.이 사건에 적용되는 죄명이 ‘존속살인’이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던데, 존속살인은 비속이 직계존속을 살해한 사건을 뜻하고, 이번 사건처럼 거꾸로 존속이 직계비속을 살해하면 일반살인죄로 처리된다. 노파심에 덧붙이지만, 존속이 조상이고, 비속은 후손을 뜻한다. 이번 사건은 직계비속이
경북 안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부모와 전직 교사 및 행정실장이 짜고 시험지를 빼돌려서 자식에게 몰래 전달하는 방식으로 내신 성적을 끌어올려 왔던 사실이 밝혀져서 한탄을 자아내고 있다. 어른 셋은 구속되어서, 학생 본인은 불구속 상태로 모조리 검찰에 송치되었다고 한다. 삐뚤어진 자녀 교육의 전형적 형태를 보는 것 같아 매우 씁쓸한 기분이 든다.이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많이들 보셨을 텐데, 구속된 학부모에게 적용된 여러 가지 죄명 중에 제일 첫 번째가 ‘건조물침입죄’라는 죄다. 단어만 들어도 무슨 행동을 했을 때 적용되는 법조항인지 누
지난번, 이 지면에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다뤘다.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 상법 개정안의 내용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번엔 집중투표제다. 지난번 최종 개정안에서는 빠졌지만, 새 정부가 상법에 넣으려고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민주주의를 달성하는 여러 방법의 하나가 투표다. 투표의 여러 방법의 하나가 다수결이다. 다시 다수결의 여러 방법의 하나가 단순투표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방식이다. 많은 사람이 지지하면 당선된다. 그런데 집중투표제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집중투표제 설명을 하기에 앞서, 상법과 투표방식
상법 일부 개정안이 며칠 전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번 개정 법률안은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세부 내용들에 관해서는 추후 이 지면을 통해 계속 이어서 소개하게 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하도록 하고, 오늘은 개정안의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인 ‘이사의 충실의무’에 관해서만 이야기해 보도록 한다.상법(商法)은 이름 그대로 상거래에 관한 법률이다. 1천 개 가까운 거대한 분량의 조문으로 이뤄진 대한민국 상법은 상거래 일반론이나 어음, 수표, 보험 등의 내용도 담고 있으나, 조문 가운데 대부분을 ‘주식회사’를 규율하는 데 사용하고
“아님 말고.” 많이 들어본 문장이다. 근거 없이 주장을 펼쳤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 뻔뻔하게 책임을 회피하면서 내뱉는 말이다. 이 문장이 일종의 유행어처럼 퍼지게 된 것은 각종 큰 사건들이 발생하였을 때 일부 언론들이 목적성을 가지고 근거 없는 선정적 의혹 제기 보도를 한 다음에 의혹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을 때 ‘나 몰라라’ 하는 행태를 많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 목적이라는 것은 대부분 해당 언론사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정권이나 정책을 폄하하기 위한 것 혹은 인터넷 황색 매체들이 광고 수익을 올리기 위한 것이
몇 달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의 제목이라서 이제는 최신 유행에서 한 발짝 멀어진 문구인 것 같지만, ‘폭싹 속았수다’라는 제주 방언이 꽤 유명하던 시기가 있었다. 필자는 이 뜻 모를 제목의 드라마가 백상예술대상 극본상을 수상하였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서 근래에 뒤늦게 작품을 접하였는데,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다만 법률가로서, 그리고 이 지면을 채우는 칼럼 필진으로서의 직업병이랄까. 16부작 드라마를 보면서 필자는 내내 머릿속으로 ‘이 유명 작품의 내용에서는 무슨 부분을 따서 칼럼 주제로 삼아볼까’하는 생각을 떨쳐내지
국내 주식시장이 엄청난 활황이다. 유가증권 시장 종합지수는 41개월 만에 최고점을 돌파하였다. 새 대통령의 상법 개정 추진 공약에다, 정국이 안정될 것을 기대한 외국인들의 한국 투자,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상 유통 현금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 환율의 변동 등이 이번 활황의 원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간에서 ‘새 대통령이 전 국민이 참여하는 주식 리빙방을 운영하는 것 같다’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정권이 바뀌고 나서 그동안 저평가 되어있었던 한국 주식시장이 살아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기사들을 보면서 가끔 필자의 사무실로 문의가
새 정부가 검찰청을 폐지한다고 한다. 검찰이라는 단어가 한국 현대사에서 지녀온 무게감 때문에 그리고 새 정부 수반이 갖고 있는 검찰에 대한 적대적 인식 때문에, 자극적 기사만 쏟아내길 좋아하는 일부 언론들은 ‘검찰청 폐지’라는 문구에만 집중하나, 정책의 골자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이다. 분리만 한다면 검찰청을 폐지하든 말든 상관없이 이번 정책의 목표는 달성되는 것이고, 반대로 분리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검찰청만 폐지하고 권한만 다른데 주면 사실상 이름만 바꾸게 되는 것일 뿐이니 현행 제도와 다를 것이 하나 없게 된다.그렇
필자는 며칠 전 가족과 함께 질병 검진을 위해 종합병원에 다녀왔다. 미리미리 전문가로부터 질환 유무와 건강 상태 등을 검사받아 작은 병이 큰 병으로 도지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 나중에 큰 병으로 발전하고 난 뒤에 치료를 의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쉽고 경제적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진리이자 상식이다.그런데 질병과는 달리, 필자의 경험상 법률상 문제는 대부분 딴판이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의사이고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도 의사인 경우들이 많은 반면에, 평생 변호사랑 말 한번 섞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신이나 가족
사람을 징역이나 벌금형 등으로 처벌하기 위한 형사법률은 엄격하게 적용된다. 일단 법률에 명확한 처벌 규정 존재해야 하고, 어떤 사람의 행동이 그 처벌 규정에 해당한다는 사실도 검사가 법정에서 증거로 엄격하게 증명해야 한다. ‘대충 보니 나쁜 짓을 한 것 같다’ 정도의 증명뿐이면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한민국을 포함한 현대 문명국가들의 기본적 대원칙이다.음주운전 사건에서도 동일한데, 음주운전은 혈중알코올농도 수치에 따라서 아예 처벌 대상이 안 되거나 혹은 처벌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달라지도록 법에 명확히 정해져 있으므로, 혈중알
대선을 앞두고 제1야당에서 사법개혁 법률안들을 몇 개 추진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재판소원’을 인정하자는 개정 법률안이다. 재판소원 법률안은 일반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력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다른 사법개혁 법률안들과 비교하여 그 중대성이 전혀 작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나, 내용의 전문성이 높기 때문인지 언론에서 기자들이 쉽게 다루지 못하고 있는 면이 있어 보인다. 짧게 알아보자.우리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은 국민이 헌법상 보장된 자신의 기본권을 ‘공권력 행사’에 의해 침해받았을 때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라는 것을 청구하여 자신이 받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