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 정치평론가

송국건 정치평론가

“배추와 장롱 속 돈만 남은 청문회”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이상한 청문회”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관전평이다. 이틀 동안의 공방이 마무리됐으면 궁금증이 풀려야 하는데 오히려 더 커졌다.

1차 책임은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있다. 5년 동안의 수입과 지출이 맞지 않아 ‘장롱 속 6억원’ 논란이 생겼는데, 해명이 오락가락했다. 그 바람에 재산신고 누락, 증여세 탈루 의혹까지 제기됐다. 청문회 검증 대상이 아니라 수사 대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특히 결혼식, 장인상, 두 번의 출판기념회를 치르면서 6억원 현금을 확보했다는 해명(?)은 새로운 논란거리를 낳았다, 김 후보자는 자기 정도 경력의 국회의원에겐 통상적 액수라고 했다. 대다수 국민은 뭔지 모를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오래전 미국 생활을 하면서 후원자에게서 받은 돈은 배추 농사에 2억원 투자해 매월 450만원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돈은 후원자가 무상 송금한 것으로 판단한 법원 판결문이 있다. 차라리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추징금을 완납하는 등 죗값을 치렀다며 용서를 구하는 편이 나았다.

김 후보자가 정공법으로 나가지 않은 건 이유가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진 여러 논란이 검찰의 정치수사에 의한 일이었다고 강변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인사권자인 이재명 대통령도 본인을 겨냥한 수사와 기소는 모두 정치검찰이 조작한 것이라고 한다.

김 후보자가 마치 거기에 보조를 맞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전략은 여당 청문위원들이 청문 대상자를 보호하기 위해 야당 청문위원들과 대리전을 펼치는 명분이 됐다.

과거 인사청문회에서도 그런 일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일반적인 수위를 훨씬 넘어섰다. 심지어 ‘메시지가 불리하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여의도 정치권 격언에 따라 야당 의원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주요 목표가 ‘장롱 속 6억원설’을 제기한 주진우 의원이었다.

주 의원은 병역 면제, 재산, 검사 출신 부친의 과거 행적이 줄줄이 털렸다. 마치 청문위원이 아니라 인사청문회 대상인 것처럼 다뤄졌다. 그래서 이번 인사청문회가 배추와 장롱만 남도록 한 2차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힘은 최선을 다했을까. 청문회에 직접 참여한 의원 중 대다수는 만족할만한 활동이 없었다. 발로 뛰면서 새로운 허점을 찾아내려는 노력보다는 이미 제출된 기초 자료와 과거 언론 기사를 뒤적이는 정도였다.

정권이 바뀐 뒤 첫 인사청문회, 그것도 명목상 국정 2인자에 대한 검증인데 당 차원의 화력 지원도 미미했다. 국민의힘 중앙당은 조직과 정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리 인사청문회를 통과의례처럼 여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야성(野性)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무기력 때문에 맹탕 청문회의 1, 2차 책임이 있는 김 후보자와 민주당이 수월하게 허들을 넘어갔다.

청문회가 끝난 뒤 진보 성향 패널 한 사람이 방송 토론에서 한 말은 충격적이었다. 국민의힘이 야당이 됐음에도 야성을 갖추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고 꼬집으며 “우리였으면 당장 칭화대로 날아갔다”고 했다.

김 후보자 핵심 검증 대상 가운데 하나가 중국 칭화대 석사 학위 과정의 불투명성이었다. 국내에서 당직을 갖고 선거도 있는 시점에 중국을 오가며 과정을 거쳤다는데 각종 자료가 불분명했다.

이에 야당은 자료를 내놓으라고만 다그쳤다. 만일 민주당의 처지가 아직도 야당이었다면 소리만 지를 게 아니라 당장 현장을 찾아가서 뒤졌을 거라는 얘기다.
국민의힘은 이 패널의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비단 이번 청문회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현 상태라면 소수 야당으로 3년을 버텨야 하는데 투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존재의 의미가 없다.

더구나 새 정부가 대한민국의 틀을 바꾸려는 시도를 시작한 시점에 무기력하게 끌려만 다닌다면 역사에 큰 죄를 짓는 정당이 될지도 모른다.

송국건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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