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목적으로 건조물에 들어가도
주인이 알았는지, 출입행위가 어땠는지
대법원 해석에 따라 유무죄 갈려

권용덕 로앤컨설팅 대표변호사
권용덕
로앤컨설팅 대표변호사

경북 안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부모와 전직 교사 및 행정실장이 짜고 시험지를 빼돌려서 자식에게 몰래 전달하는 방식으로 내신 성적을 끌어올려 왔던 사실이 밝혀져서 한탄을 자아내고 있다. 어른 셋은 구속되어서, 학생 본인은 불구속 상태로 모조리 검찰에 송치되었다고 한다. 삐뚤어진 자녀 교육의 전형적 형태를 보는 것 같아 매우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많이들 보셨을 텐데, 구속된 학부모에게 적용된 여러 가지 죄명 중에 제일 첫 번째가 ‘건조물침입죄’라는 죄다. 단어만 들어도 무슨 행동을 했을 때 적용되는 법조항인지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명료한 죄명이다. 하지만 필자가 이 사건 기사를 보면서 위에서 이야기한 씁쓸한 기분보다 더 먼저 ‘아 이번 주 지면에는 이 내용을 소개해 봐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있으므로, 오늘은 그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기사를 보면 학부모와 전직 교사는 야밤에 학교에 몰래 침입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 범죄 목적으로 침입한 것이 겉으로도 분명하므로 건조물침입으로 인정되는 것에 문제가 없다. (물론 밤에 침입해 물건을 훔쳤으니 ‘야간건조물침입절도죄’라는 죄명으로 더 중하게 처벌된다.) 그런데, 이 학부모가 대낮에 태연하게 학교를 방문했었다면 어떻게 될까. 학부모가 시험지를 훔칠 목적을 숨기고 담임교사 면담을 신청한 뒤 그 빌미로 대낮에 학교를 방문해서 교무실 안을 걸어가다가 범죄 목적 방문인 것을 들켰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래도 건조물침입으로 처벌되는 것일까?

이는 ‘주인의 승낙을 받아 건조물에 들어갔지만 사실은 범죄 목적의 출입이었던 경우’ 혹은 ‘주인 승낙은 없었지만 일반인의 출입이 자유롭게 허용된 장소(상가 등)에 범죄 목적으로 들어간 경우’에도 건조물침입죄가 성립하느냐의 내용으로서, 도청장치를 몰래 설치하기 위해 식당에 손님인척 태연하게 들어갔다가 잡힌 사람에게 대법원이 건조물침입죄를 인정하였던 것에서 연유한 문제다. 30여 년 전 사건인데, 당시 대법원은 ‘범죄 목적이었다는 것을 주인이 알았다면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근거로 건조물침입죄를 인정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약 30년 만인 지난 2022년에 유사 사건에서 위 판결의 논리를 폐기하고 ‘주인이 알았다면 출입을 불허했을 사정이 있었더라도 일단 출입 행위 자체가 평화롭고 아무 문제 없이 이루어졌다면 침입이라고 볼 수 없다’라면서 건조물침입죄에 관한 무죄를 선고하였다. 따라서 바뀐 새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안동 학부모가 시험지 절도 목적으로 담임 면담을 신청하고 대낮에 평온하게 학교를 방문하였다가 잡혔더라도 건조물침입죄는 성립하지 않게 된다(물론 절도나 업무방해 등 다른 죄로 처벌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대법원 판결이란 이렇듯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안타까운 사건을 접하며 법지식을 하나 늘어놓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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