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들고 있음도 놓아줌도 모두 갈무리
정겨운 소품 속 인연 맺었던 기억 담겨
이젠 안녕 고하며 깔끔한 마무리할 때

금동지 전 경남대 교수 / 경남대 고운학연구소 연구원

가끔 어디에 뒀나 싶어 물건을 찾다가 옷장이나 서랍을 강제로 정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 어느 리조트 기념품 가게에서 딸이 사준 하얀 꽃 모양의 커다란 머리핀을 찾았고, 어머니가 직접 만들고 수를 놓은 모시 저고리도 찾았다. 유품 정리를 하다, 이 옷을 입고 환하게 웃던 어머니 모습이 하도 생생해서 챙겨온 옷이었다. 며느리가 사준 개량 한복 바지까지 모시 저고리 밑에 받쳐 입고 외출을 했다. 친구가 선물해준 까슬까슬한 여름 모시 소재의 긴 스카프를 하얀 머리핀으로 살짝 고정도 시켰다. 날이 덥기도 했지만, 아래위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걸쳐서인지 내내 내 마음이 뜨뜻했다.

뜬금없이 옷이며 스카프를 나열하는 이유가 자랑을 위해서는 아니다. 내가 최근에 어떤 노래의 가사에서 새로운 의미를 깨달아서이다. 친구들과 몇 달 후로 예정된 정기 공연의 노래를 점검하다 나훈아의 「갈무리」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대충 흥얼거리며 멜로디를 따라 부를 정도였는데, MR을 틀어놓고 가사를 보니 노래의 끝말이 ‘사랑 갈무리’였다. 이미 가버린 사랑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자신이 싫고 미워서 사랑을 갈무리하겠다는 뜻이었다.

다가올 겨울을 위해 다람쥐가 도토리를 잘 모아 정리하고 보관한다는 의미의 갈무리 뜻에 익숙하던 터라,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자신이 밉다면서 끝난 사랑을 간직해서 어쩌려고 하는 의혹이 갈무리의 정확한 뜻을 기어이 찾아보도록 만들었다. 갈무리에는 정리하여 잘 보관한다는 뜻도 있지만 일을 잘 처리하여 끝맺음을 깔끔하게 한다는 뜻도 있었다. 그야말로 마무리를 확실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제야 호소력 짙은 가수의 음성에 얹혀 노래의 의미와 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모든 일에 갈무리를 잘해야 삶도 단정할 듯싶다. 자칭 정리의 달인이라는 지인의 집에서는 본인이 의도적으로 장식한 것 말고는 잡다한 소품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양한 활동 특히 화가인 그녀의 붓이나 물감 등 그림에 필요한 온갖 도구들도 어딘가에는 있을 듯한데 그런 흔적 하나 찾을 수 없어서 어느 방 하나에는 온갖 자질하고 잡다한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것으로 억측하게 된다. 그래야 엉뚱하고 생뚱맞은 장소에서 발견되는 나의 물건들에 대해서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갑자기 온 전화나 잊었던 일이 떠올라 하던 일을 멈추게 될 때, 다시 계속할 것으로 생각해서 물건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지 않았을 뿐이고 그 물건들은 멈춰둔 그곳에 생각보다 오래 머물러있었을 뿐이라고. 파우치나 작은 가방에 소중한 소품들을 넣어 서랍이나 정리 바구니 안에 두는데 같은 종류의 서랍이나 바구니의 수가 좀 많을 뿐이라고.

인연도 그러할 듯하다. 정리를 잘하는 그 지인은 사람에 대해서도 갈무리를 잘하는 듯 보였다. 보관할 사람과 정리할 사람을 잘 구별하는 듯 보였다. 인연 갈무리에도 달인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곳에서 툭 튀어나온 소품들 속에 오히려 내 인연이 갈무리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다. 정겨운 그 물건 속에 사람이 보이고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고 그 사람과 인연을 맺었던 시간과 장소가 주마등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아가신 엄마와 둘째 언니의 오래된 소지품들조차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잘 정리하여 보관하거나 잘 정리하여 마무리한다는 갈무리의 두 의미를 실행에 옮겨 볼 일이다. 붙들고 있음도 놓아줌도 다 갈무리라 했으니 소중하게 간직해온 내 인연의 물건들과도 조만간 안녕을 고하며 깔끔한 마무리를 해야 할 것도 같다. 「갈무리」 노래를 들으며 오늘 글을 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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