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 온 애인으로부터 기다리다 지쳐 다른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말을 들은 죄수는 탈옥을 결심한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으로 감옥 안에서 땅굴을 파기 시작하고, 결국 태풍이 몰아치던 날 밤 아무도 몰래 탈옥에 성공하여 다음 날 아침 기쁜 마음으로 길에서 조간신문을 펼쳐 든다. 아뿔싸, 이번 광복절을 맞이하여 특별사면 대상자 목록이 발표되었는데 그 안에 내 이름이 있다?! 죄수는 이제 아무도 몰래 다시 감옥 안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래서 무사히 광복절 특사로 출소해야만 한다. 20년도 넘은 충무로 영화인 『광복절 특사』의 내용이다.
이렇게 영화 제목으로도 존재할 만큼 광복절 등 국경일에 사면이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요 며칠간, 이 광복절 특사(특별사면)를 두고 시끌벅적 말이 많다. 필자도 며칠 전 동네 공원을 거닐다가 자녀의 전문대학원 입시비리로 유죄가 최종 확정되어 수감 중인 유명 정치인이 이번 광복절 특사의 대상이 된 것을 두고 찬반 문구를 기재한 각 정당들의 현수막들이 경쟁적으로 가로수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사면이다.
사면(赦免)이란 글자 그대로 용서(赦)해서 처벌을 면(免)하게 해주는 것인데,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이 사면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사면을 대통령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권한이라고 못 박았다. 헌법 규정이기 때문에 이를 금지하려면 국민투표를 통한 헌법 개정이 필요하고, 헌법 개정 없이는 국회에서 대통령이 마음에 안든다고 사면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막을 수 없다. 사법부 또한 대통령의 적법 절차에 따른 사면권 행사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엄중한 법치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된 죄인을 이렇게 뜬금없이 대통령이 마음대로 풀어줄 수 있다고 헌법에 규정한 첫 번째 이유는 헌법 구성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이다. 삼권분립은 입법, 행정, 사법의 각 권력이 각자 가진 권한으로 상대의 권한을 억제할 수 있게 함을 기본 원리로 하는데, 입법부가 자신의 권한으로 법률을 만든 뒤 사법부가 자신의 권한으로 그 법률을 적용하여 재판을 해서 어떤 국민을 죄인으로 만들어놓으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으로서는 사면권이라는 권한을 행사하여 입법부 및 사법부의 그와 같은 권한 행사를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삼권분립 외에, 국민 대통합의 필요성 등을 사면권 존재의 부차적 이유로 들기도 한다.
이렇게 삼권분립이나 국민 대통합이 사면권의 존재 이유라면, 사면권의 사용 또한 삼권분립이나 국민 대통합의 달성을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번에 문제 된 광복절 특사는 내용을 보아하니 그 어느 것에도 딱히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존재 이유를 좀 더 고려한 사면권 행사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