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시간을 사지 않아도
내 시간을 느릿하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있는 것으로 자족하는 마음, 행복하다

금동지 전 경남대 교수 / 경남대 고운학연구소 연구원

“행복해지려면 ‘식세기’를 사세요.”라는 ‘클릭베이트(clickbait)’ 즉 ‘낚시성 제목’에 낚여 행복과 관련된 동영상을 본 적 있다. 나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시간이 없다거나 할 일이 많다고 불평하지 말고, 남녀평등을 소리 높여 외치지도 말고, 차라리 돈을 들여 식기 세척기를 사라는 것이다. 귀찮고 싫은 일은 가능한 가전 제품에게 떠맡기고 그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더 실리적이라고 했다.

필수품이 되어버린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정도는 누구나 다 누리는 디폴트 행복값이 되어버렸으니 식기 세척기나 건조기, 이제는 얼음이 나오는 정수기와 같은 옵션형 가전도 망설이지 말고 과감히 사서 자신의 시간을 더 가져보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편리를 추구하는 시대 풍조에 발맞추어 에어프라이어며 캡슐커피머신이며 기능이 약간만 업그레이드되어도 새 제품에 마음을 빼앗기는 나로서는 당연히 “맞아.”하면서 맞장구를 쳐야 하는데도, ‘돈이면 다 가능한 세상에 행복까지 돈으로 사야 하는 걸까?’ 싶었다.

사실 나는 최첨단 과학의 달콤한 혜택을 누리면서도 여전히 수동의 매력을 잊지 못하고, 아날로그의 감성을 즐기는 아이러니에 빠져있다. 로봇청소기 대신 세라믹 빗자루로 부엌 바닥을 쓸어 먼지와 찌꺼기를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를 즐기고 설거지의 손맛도 즐기고 있다.

수돗물을 틀어 물이 손에 닿는 시원한 느낌이 좋고 그릇을 손으로 붙들고 씻을 때의 뽀득뽀득 헹궈지는 그 느낌이 또 좋다. 손으로는 감촉을 즐기면서 한편으로 또 즐기는 것이 있기도 한데, 눈높이에 있는 넓은 직사각형 부엌 창이 사계절을 담아내는 액자인 양 매일 다른 풍경을 눈앞에 펼쳐 보여주니 말이다.

지난 명절에 친정 나들이를 온 딸은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과 새언니를 번갈아 보더니 앞치마를 서둘러 두르면서 ‘식세기’를 사라고 했다. 나의 반응이 시큰둥 하자 새언니를 위해서라도 ‘식세기’를 사라고 살짝 수위를 높였다. 주문해서 보내준다고까지 하니 한편으론 솔깃했고 한편으론 두려웠다. 세척 대신 프라이팬과 냄비를 넣어두는 가구로 사용하고 버렸던 적이 두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는 2천개가 넘는 촛불을 밝히는 ‘거울의 방’이 있었는데, 빛나는 방을 뽐내기 위해 촛불을 켜고 끄는 하인만도 수백 명은 족히 필요했을 것이다. 왕이 돈과 권력으로 타인의 시간과 노동을 얻었다면, 스위치 하나로 왕보다 더 환히 방을 밝힐 수 있게 된 우리 현대인은, 지금은 ‘식세기’이지만 다음엔 또 무엇으로 시간을 사고, 또 행복을 사야 할까?

돈을 주고 시간을 사야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된다. 어린아이들에게 선행학습을 시키는 엄마들은 말한다. 나중에 학년이 높아지면,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시간이 없으니, 지금 돈을 주고 영어며 수학이며 논술이며 미리미리 공부시킨다고.

나이가 든 나는 시간이 없지도 않고, 미래에 꼭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선행학습을 할 필요도 없다. 느리게 가도 재촉하는 이가 없고, 잘하지 않아도 질책하는 이도 없다. 불편해도 내가 불평하지 않으면 세상은 조용하고 나의 육체가 고단해도 단잠을 잘 수 있으면 그것도 감사하다.

구태여 돈으로 시간을 사지 않아도 노인의 시간은 느릿하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있는 것으로 자족하는 마음이면 충분히 행복할 듯도 싶다.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