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실수, 경험으로 승화하고
상대 단점을 나의 단점으로 ‘퉁쳐’
서로 주고받는 것을 없애는 셈법
우리가 잘 아는 어느 개그맨에게 후배가 물었다. “어떻게 형님은 화를 잘 안 낼 수가 있나요?”라고. 그 대답이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누가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심한 손해를 끼쳤을 때, 내가 화를 못 참아 소리를 지르면, 상대방은 마땅히 할 사과나 보상 혹은 책임을 지는 대신 내가 화낸 것으로 그걸 퉁쳐 버리더군.” 했다.
그러니 감정을 못 이겨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도 하고 손해를 보는 일이기도 하다. 소리를 지르거나 인상을 찌푸리거나 거친 표현을 쏟아내는 작은 형태의 폭력은 감정을 해소할 수는 있으나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하게 하고, 고쳐야 할 부당함도 수정하지 못하게 한다. 오히려 나의 품격을 떨어뜨리거나 잘못은 상대방이 했는데도 화를 낸 민망함과 미안함으로 오히려 상황이 역전되기도 하니 밀이다.
더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퉁치다.’도 있다. 어느 여배우에게 후배가 하소연했다. 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이유도 없이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거나 악의가 가득한 댓글을 단다고. 그녀의 유쾌한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잖아. 그런 거야. 퉁치면 돼!”
실제로 우리는 별 잘못도 없이 미움을 받을 때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 조건과 이유 없이도 나를 지지해주거나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있다. 그러니 퉁칠 수밖에,
사실 ‘퉁치다.’라는 표현은 비표준어이다. 그래도 이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가까운 사이에서는 편하게들 사용하기도 하고, 더 중요한 것은 한 방으로 상황을 종료하고자 할 때 아주 효과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리라.
의미를 들여다보면 기본적으로는 계산이 깔려있는데, 일반적인 셈법인 ‘기브앤테이크’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서로 주고받아야 할 것을 없던 셈으로 친다는 뜻인데, 주고받을 대상이 다른데도 같은 값으로 뭉개버린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되는 것은 돈이나 물건이 될 수도 있지만 수고나 시간 같이 계산이 애매한 것들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화나 배신처럼 보복을 부르는 것들도 있다. 이런 다양한 것들을 같은 값으로 계산해 서로 맞교환하듯 주고받는 것 자체를 없애자는 계산법인 셈이다.
‘퉁치다’의 또 다른 의미에는 치밀하게 계산을 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거나 어림잡아 처리한다는 뜻도 들어있다. 그러니 ‘퉁치다’가 갖는 두 의미를 다 생각해보면 계산이 밝지 않게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 생긴다. 그들은 나름의 셈법으로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을 다른 사람의 재화와 퉁치고 있을 수도 있으니.
어느 은퇴한 교수님이 그러셨다. 자신이 재직할 때 혜택을 입은 사람도 꽤 많은데, 학교를 떠나고 보니 그걸 알아주거나 찾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조금 서운하다고.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리더의 배려는 고맙기는 하지만 빚은 아니기에 받은 이들은 쉽게 무관심해지고 소홀해지기 쉬울 터여서.
위로 반 농담 반으로 이렇게 말씀드렸다. “혜택과 상관없이 여전히 교수님과 함께 남아서 꾸준히 같이 활동하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떠나고 없는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을 퉁치시면 됩니다.”라고.
퉁칠 일은 많다. 과거의 실수는 경험이라고 퉁치고, 상대의 단점은 나의 단점으로 퉁치고, 계획이 틀어지면 재미있는 우연으로 퉁치면 된다. 떠난 사람과의 인연도 내게 남은 소중한 인연들로 퉁치면 된다. 퉁치다 보면 많은 것이 쉬워질 것도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