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 ‘때문에’ 실패한 진실 부인하기 전
‘때문에’ 뒤에 숨은 ‘덕분에’ 길 택해보자
다시 일어나 단단해진 나로 다시 설테니
삶은 매일 우리를 두 갈래 길 위에 서게 한다. 아니 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때문에”라는 길을 택할지 아니면 “덕분에”라는 길을 택할지. 둘 다 일어난 일에 대한 원인을 설명하는 표현이긴 하지만 그 접근법은 완전히 다른 것 같다.
나의 부족 ‘때문에’ 실패한 진실을 부인하라는 말은 아니다. “때문에”도 당연히 있어야 하고 원인분석 또한 냉철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얼마든지 우리는 같은 밑그림에도 다른 색깔을 칠할 자유를 가지고 있고 그 자유를 행사하여 따뜻한 그림으로도 만들 수 있다.
뒤돌아보면 누구나 “때문에”의 길로 들어서 자신을 쓰러뜨린 그 날에 대한 원망으로 오래 힘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은퇴 전 나에게도 한차례 어려운 일이 있었다. 교재를 활용한 영어 회화 수업에 익숙해 있던 교수들에게 새 학장은 자기 주도적 팀 활동 수업이라는 당시 트랜드를 따르자고 했다. 외국인과의 일상적인 대화조차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더구나 신입생들에게, 팀을 만들어 영어 프로젝트를 완수하게 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교수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첫째는 학생들 능력에 대한 의심이 있었고 둘째는 수업에 필요한 사전 준비에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는 기존의 수업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단계마다 학생들에게 끊임없는 피드백을 제공해야 했다. 그러니 부담과 거부감, 원망까지 있어서 학부장을 맡은 나로서는 큰 부담이었고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한 학기 내내 어렵게 준비한 그 프로젝트 수업에 대해 학생들이 보인 태도와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가이드 되어보기 프로젝트에서는, 학교 주변을 안내하는 PPT를 만들어 슬라이드 쇼를 하면서 관광객이 된 다른 학생들에게 관광명소를 안내하게 했는데, 동영상을 만들어 교내 프로젝트 대회에서 수상하는 팀도 생겼다. 전공을 마친 후 자신이 취업할 수 있는 직업을 알아보고 면접 시에 하게 될 영어 프리젠테이션 준비도 시키고, 세상에 없는 발명품을 만들어 이를 마케팅하고 광고하는 프로젝트도 시행해 보았다.
첫 수업 때 프로젝트 수업이라고 하니 기겁하던 학생들이 매주 제공해 준 표현을 자신의 표현으로 바꾸어 스토리텔링을 입히게 하고, 조별 진행 과정을 매주 업로드 시켜 이를 다시 피드백해주니 학생들은 매주가 다르게 성장했다. 마치 취업을 앞둔 취준생이나 된 듯 발표도 하고 서로 심사위원이 되어 다른 팀의 프로젝트에 점수를 매기게도 하면서 한 학기를 보냈다.
교수 학생의 구별도 없이 우리는 모두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운명공동체라도 된 듯 편의점 김밥도 나누어 먹고, 상업성 좋은 상품 마케팅을 위해 화상으로 조별 회의도 하며,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했다. 한 학기를 마치니 학생들은 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수강해도 두려울 게 없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그렇게 은퇴하는 날까지 교양 영어를 하면서도 즐거웠다.
사실 프로젝트 수업을 강행시켰던 세련되지 못한 강요와 순조롭지 못했던 초반 대응으로 마음이 상하기도 했고 그 원망으로 오래 마음이 상해있기도 했지만 되돌아보면 그 “덕분에” 나는 인생 수업을 할 수도 있었고 학생들에게도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때문에”를 “덕분에”로 체험하게 되니 나는 대부분의 많은 “때문에” 뒤에 “덕분에”가 숨어있음을 믿고 기대한다. 지금 내가 힘이 드는 것에 대해서도 후일에는 “덕분에”라고 감사하게 될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트북의 자료를 정리하다 아직도 남아있는 과제 동영상 “덕분에” 내가 넘어졌던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더 단단해진 나로 다시 섰던 어느 시점을 잠시 소환해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