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구기관·투자자·기업 힘모아
지역의 전통산업과 신산업 강점 살려
대구·경북형 기술창업 기업 육성해야
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 지역 중소기업 대표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한때 활기를 자랑하던 전통산업은 성장을 멈췄고, 청년들은 더 나은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난다. 인구는 줄고, 소비는 위축되면서 지역상권마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대구·경북이 다시 뛰기 위해서는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
그 답은 기술창업에 있다. 기술창업은 단순히 가게를 열거나, 작은 장사를 하는 창업과는 다르다. 신기술과 첨단지식,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이를 사업화하는 창업을 말한다. 인공지능 기반 의료진단 서비스, 차세대 배터리소재, 친환경 모빌리티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번 성공하면 파급력이 크고, 기존 산업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와 열정 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기술창업 기업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투자라는 연료, 보육이라는 길잡이, 시장과의 연결이라는 날개가 필요하다. 기술창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술창업이 활성화되면 지역경제 전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첫째,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 청년들이 굳이 서울로 가지 않아도 지역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둘째, 산업 혁신이 촉진된다. 전통 섬유산업에 IT와 바이오가 결합해 스마트 의류나 기능성소재로 변신할 수 있다. 셋째, 지역 자본이 지역 안에서 선순환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지역에서 모인 투자금이 지역 기업에 들어가고, 그 성과가 또 다른 창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구·경북은 원래 제조업이 강한 지역이다. 여기에 로봇, 의료, 친환경에너지, 이차전지 같은 신산업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기술창업이 성장하기에 좋은 토양을 이미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금과 네트워크가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100억 원 이상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의 80% 이상이 서울에 있다. 지역에서 시작한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면 수도권으로 본사를 옮기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다행히 변화의 움직임도 시작됐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민간과 공공 자본을 결합한 ‘지방시대 벤처펀드’를 만들었고, 경북도는 포스코와 함께 1천억 원 규모의 모펀드를 조성했다. 앞으로 2천500억 원까지 확대해 바이오헬스, 스마트 제조, 이차전지, 반도체 등 지역의 기술창업 기업을 집중 지원할 계획이다. 이제는 “투자를 받으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앞으로 대구·경북은 수도권을 따라가려고 하기보다 지역 만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 대규모 투자와 빠른 회수를 중시하는 수도권 대신, 투자–보육–판로를 촘촘히 이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창업기업이 투자를 받은 뒤에도 판로 개척, 공공기관 납품, 대기업 협력까지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 연구기관, 산업단지, 공공기관이 함께하는 ‘원팀 플랫폼’이 요구된다. 9월 대경중기청이 개최하는 ‘스타트업 페스티벌’은 이런 노력을 보여주는 무대다. 투자 IR, 오픈 이노베이션, 기업–투자자 만남 등을 통해 기술창업 기업이 직접 투자자와 연결된다.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지역에서 기술창업 생태계가 자리잡는 출발점이다.
앞으로 대구·경북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전통산업과 신산업의 강점을 살려 ‘대구·경북형 기술창업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의 대학과 연구기관, 투자자, 기업이 힘을 모아 기술창업 기업이 자본의 사각지대가 아닌 기회의 중심지에서 도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술창업 기업 육성은 선택이 아니라, 지역이 살아나기 위한 필수전략이다.
정기환 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