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여 배워야 하는 언어 익히며
한국 이해할 마음의 창 활짝 열고
생활·문화·역사도 알 수 있게 해야
요즘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애니메이션 영화의 인기를 전하느라 떠들썩하다. 제목에 ’케이팝‘이 들어갔으니, 풋치니의 ‘나비부인’이 일본을 알리는 것보다는 더 직접적인 홍보가 되는 걸까? 아니 그보다는 소품 하나에서조차 한국의 흔적을 읽는다는 것은 이미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올라와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케데헌이 한국을 홍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성장이 이 현상을 가능하게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K-pop, 한류문화의 성공은 국가 경쟁력, 소득, 기술, 인지도, 신용도를 등에 업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국 청년들이 영어로 표현하기 힘든 한국어, “어머나!!”라든가, “어떡해, 어떡해!”라는 감탄사나 허사 등을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섞어 사용하고 있는 동영상은 이미 여러 해 전에 떠돌고 있었다. 자신들의 언어로 일상대화를 하면서 제대로 표현하기 힘든 한국 단어나, 또는 그 기분을 독특하게 느끼고 있는 허사들을 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아마도 드라마나 노래를 통해서 배운 단어들이거니 싶다.
벌써 44년이나 지난 1981년 파리7대학 동양언어문화학부에 갔었다. 그곳에는 동양 언어 강의들이 있었다. 일본어 강의실에는 프랑스 젊은이들이 넘쳐 나서 수강 신청 한도를 넘기고 있었다. 중국어 교실도 가득 찬 편이었다. 한국어 강의실에는 세 명이 있었다. 특정 종교 신자인 그리스인, 대사관 직원인 프랑스인, 한 명만이 특수연고가 없는 학생이었다. 왜 일본어 수요가 이렇게 넘치는가를 물었더니, 프랑스인 친구들은 “일본어를 하면 일자리도 많고 쓰일 곳이 많잖아.”라고 답했다. 사실, 프랑스에는 박물관에 있는 안내판도 일어를 병기 하는 곳이 꽤 있었다. 동시에 그때 한국어 교재가 성의없이 준비되었음도 눈에 띄었다.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이들이 급증한다는 고무적인 현상에 주목하며, 이 시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재에 대해 점검해 보았으면 한다. 언어는 문법이 뚜렷해서 논리적으로 배우는 그룹이 있고, 아니면 익히면서 체험으로 배워가는 계열이 있다. 그중 한국어는 문법으로는 가장 완벽하다고 하기 어려운, 학습 난도가 높은 언어이다. 높임말, 조사, 어순 등 많은 부분을 함께 생활하며 체험으로 익혀 보충해야 한다. 공들여 배워야 하는 언어를 익히면서,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할 마음의 창을 열도록 해야 함은 우리가 기울여야 할 필요불가결한 노력이다. 한국어 학습에서 학습자들이 기억할 한국의 생활, 문화, 역사를 담아갈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던 세대가 『모제』(Mauger, 정식명칭은 『Cours de langue et de civilisation françaises』) 라고 부르던 교재가 있다. 총 4권 시리즈로 구성된 이 책은 1953년 발간되어 1960~80년대까지 프랑스어를 배우는 학생들 사이에서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자리잡았었다. 이 책은 문법 구조를 단계적으로 학습할 뿐 아니라, 프랑스 사회·역사·문화·문학을 함께 소개하여 학습자들이 프랑스와의 접점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의 특징은 점차적으로 복잡해지는 내용을 다루면서도, 앞에 학습한 단어들을 이해하면 뒤에 든 예시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조직한, 그 철저함에 있다. 대화의 기회가 적다는 이 교재는 그때 오디오 학습방법을 동원했었다. 이젠 다른 스타일의 교재들로 대체되었지만, 『모제』는 ‘오랫동안’ 으뜸자리를 지켰다.
현재 국립국어원과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을 비롯한 주요 대학들에서 공들여 한국어 교재를 제작하고 있다. 이 기관들 모두와 한국의 역사·지리·종교·민속·문학·철학의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산뜻한’ 교재를 검토할 때가 아닐까 한다. 잘된 한국어 교재는 ‘외교의 황금어장’을 깔아줄 수 있다.
김정숙 영남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