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확신과 겸손 사이 균형을 잡고
내 판단이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가 투자 결정을 내릴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종종 숫자가 아니라 마음이다. 특히 부동산처럼 불확실성과 기대가 공존하는 자산에서는 자신의 선택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심이 외부 자극에 의해 쉽게 증폭된다. 친구의 성공담, 언론의 뜨거운 보도, 정부 정책의 방향, 커뮤니티에 떠도는 추측성 정보 등등.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생각에 예고 없이 덮쳐온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이 가는 방향이라면 안전하겠지’라는 안도감에 기대기 시작한다. 심리학자 구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은 군중심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군중 속에서 개인은 자율성을 잃고 집단의 감정에 전염되었고, 결국에는 이성은 사라지고 열정만 남았다.”
그의 말처럼, 투자자 역시 무리 속에서 독립적인 사고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한국처럼 부동산이 생애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회에서는, 주변인의 말 한마디가 ‘정보’가 아니라 ‘불안의 촉매’가 되기 쉽다. 결국 우리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수가 선택한 길이 옳다’는 착각에 빠져서 실수를 반복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틀린 줄 알면서도 따라가는가?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동조 실험’은 우리에게 그 이유를 보여준다. 실험 참가자들은 명백히 틀린 답인 줄 알면서도, 주변 사람들이 같은 오답을 말하자 결국 자신도 따라간다. 사람은 논리보다 소속감에 약하고, 판단보다 소외에 더 두려움을 느낀다. 투자라는 고립된 싸움에서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감정은,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이어진 부동산 과열기에도 역시 그랬다. ‘패닉바잉(Panic Buying)’, ‘영끌’, ‘묻지마 투자’라는 단어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당시 대중심리의 집단적 반영이었다. “지금 안 사면 평생 못 산다”는 말은 분석이 아닌 공포였고, 그 공포는 수많은 이들의 통장을 움직였다. 그러나 부동산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다. 정부의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이 시작되자 열기는 빠르게 식었고, 심리만 믿고 움직였던 이들은 가장 먼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시장에서 사라진 것은 단지 유동성 만이 아니었다. 투자자들의 자기 기준,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 함께 사라졌다.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조건 반대로 가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중요한 건, ‘스스로의 기준’을 설정하는 일이다. 자신의 투자 원칙, 감당 가능한 리스크, 그리고 진짜 원하는 삶의 방향이 정리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언제든 타인의 확신에 기대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개념이 있다.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다. 주변의 기대는 사람의 행동을 바꾸고, 반복되는 믿음은 행동을 실제로 끌어내기도 한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여긴 무조건 오른다”는 말이 수없이 반복되면 그 믿음이 실제 시장을 움직이고, 사람들은 그 움직임을 ‘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판단은 관성처럼 굳어지고, 냉정은 감정에 길을 내준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단 하나다. 자기 확신과 겸손 사이의 균형. 이 균형이 무너질 때 우리는 확신만 앞세워 타인의 소리를 무시하거나, 반대로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불안에 휘둘린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 건, “나는 이 선택을 충분히 검토했고, 지금 이 길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내 판단이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김준영 빌사부 부동산중개법인 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