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권자의 입법·사법부간 서열 발언
국회독재 뒷받침, 헌법 파괴하는 꼴
법 앞 만인평등 명제 흔들어선 안돼

김경국정치평론가
김경국
정치평론가

“권력에도 서열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이 분립되어 서로 견제를 한다고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의 우위에 있다는 말이었다. 귀를 의심케 할 만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국민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 국민이 직접 선출한 권력이고, 따라서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국민주권’-‘직접 선출 권력’-‘간접 선출 권력’의 순이라는 것이었다.

삼권분립이라고 마냥 삼권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그런데 어느날 대한민국이 사법국가가 되어가고, 사법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정치가 사법에 종속되는 위험한 나라가 됐다”고 지적했다.

과연 그런가. 단적으로, 무려 5건이나 진행되던 이 대통령의 재판이 하나 같이 중단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게 정치가 사법에 종속된 결과인가, 아니면 반대의 경우인가. 이어 “절제와 자제가 사법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도 말했다. 쉬운 말로 하자면 ‘눈치껏 해라’는 뜻이 아닌가.

민주공화국의 요체는 권력분립이다. 상호견제를 통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사법권을 독립시킨 것이다. 사법의 독립과 재판의 중립은 민주공화제의 기둥이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법을 위반하면 예외없이 법의 심판을 받게되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세명씩이나 탄핵을 당한 것도 그래서이다.

삼권분립은 상호견제를 위한 장치다. 사법까지 투표로 뽑으면, 엄청난 권력집중이 우려되기 때문에 임명직으로 영역을 분리시켜 선출직을 견제토록 한 것이다.

입법과 행정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만, 사법은 헌법에 따라 임명됐다. 그 헌법은 국민이 만들었다. 따라서 사법부 역시 헌법적인 권한을 가진다. 입법과 사법, 그리고 행정이 동등한 자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이다.

그래서 국가권력에는 역할이 있을 뿐, 서열은 없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입법권력이 서열이 높으니까, 사법부는 입법부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순위를 매기고 있다.

국민은 공복을 뽑은 것이지 절대자를 선출한 것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 국민이 모든 일을 일일이 결정할 수 없으니, 대의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다. 국민을 대신하는 일꾼들이 권력에 취해 국민을 배신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사법부라는 장치를 만들어 ‘견제하고 통제하라’는 것이 헌법정신이다.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는 헌법학자 대다수가 ‘위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비웃듯이 “그게 무슨 위헌이예요”라는 한마디로 정리를 하려한다.

최종적으로 ‘판사는 대법원장이 임명한다’는 헌법조항만 따르면 내용이야 어찌되건 국회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회독재’나 다름없는 발상이다.

위헌여부에 대한 최종판단은 헌법재판소가 한다. 그런데 임명권자가 저런 말을 하면 헌법재판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지침 내지 압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헌법을 수호해야할 의무를 지닌 대통령이 앞장서서 헌법을 파괴하는 꼴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아무리 살펴봐도 ‘공복’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의 핵심은 대법관을 현재보다 두 배 가까이 늘려 사법부를 장악하고, 내란특별재판부를 설치해 내란재판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정치권력이 사법권력을 좌지우지하겠다는, 헌법파괴행위다.

사법부의 판단으로 정권이 붕괴되건, 개인이 몰락하건 우리 모두는 법앞에 평등하다. 사법부가 아무리 공포와 분노의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만인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명제를 뒤흔들려고 해서는 안된다.

“권력에 서열을 매기겠다는 발언은 모든 권력 위에 군림하겠다는 독재자 선언이다. 나치도 국민을 앞세웠었다”라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말을 되새겨볼일이다.

김경국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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