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지 전 경남대 교수 / 경남대 고운학연구소 연구원
금동지 전 경남대 교수 / 경남대 고운학연구소 연구원

지난 주말 일본을 다녀왔다. 남편의 초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위해 모은 돈의 일부를 꺼내어 코로나 이후의 첫 해외 나들이를 한 것이다. 네 부부 즉 8명의 적지 않은 인원이 움직이는 거라 자유여행이나 패키지여행 등 다양한 여행형태를 고려해보았으나 결국 이제껏 그래왔듯이 우리 일행만으로 구성된 맞춤형 여행을 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가 참석하지 못했던 지난 일본여행 이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몇몇 회원들의 “단무지가 제일 맛있었다.”라는 음식평을 거의 7년간 들어왔기 때문에 순전히 여행사에만 의존하여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여행은 피해 보자는 생각에 아는 여행사가 있으니 여행지와 음식도 알아보고 추진을 해보겠다고 선뜻 나서고 말았다.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었다. 적극적인 신임 회장도 있고, 얼마든지 추진할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맛없는 음식과 재미없는 여행을 서둘러 차단해보리라는 나의 성급함이 마음고생을 자초하게 했다.

여행은 9월이었지만 4월부터 어려움에 봉착했다. 7월 초 일본에 닥친다는 대재앙설은 여행 자체를 추진할 것인지 취소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하게 만들었다. 일본여행 관련 동영상을 계속 찾아보아서인지, 몹쓸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대재앙을 경고하는 유튜브로 나를 이끌었고, 대지진을 우려하여 여행을 취소하는 지인들의 얘기로 나의 귀를 팔랑거리게 했다.

남들이 말리는 그런 여행을 구태여 강행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라고 입으로는 말했지만, 그 이면에는 크게 두드러진 장소가 없는 소도시 여행에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 매끼 제공될 것인가에 대한 부담이 커서 여행 자체를 무산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던 것 같다.

오래된 세월로 인해 허물없는 사이가 되긴 했지만, 남편 모임의 일원에 불과한 내가 이 여행의 추진을 맡은 것 자체가 주제넘은 듯하여 자책도 했었다. 그러나 여행에 대한 모두의 기대와 의지가 대재앙설의 루머를 이기는 것을 보고는 나도 책임을 다해보리라는 생각으로 부지런하고 친절한 주선자의 역할을 기쁘게 수행하기로 했다.

소규모 여행이다 보니 8명만을 위한 렌트카와 전속 드라이버 겸 가이드가 필요했다. 이탈리아 성지순례를 함께 다녀온 인연으로 알게 된 여행사 대표는 세심하게 일정을 잡고 맛집을 예약해주었다. 11년째 큐슈 지역에서 여행안내를 맡고 있다는 가이드는 친절했고 예의 발랐으며 일본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아니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많은 부분까지 설명해주었다.

일방적인 가이드의 설명이 아니라 10인승 버스 안에서 주거니 받거니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농담과 웃음으로 맞장구를 치는 화기애애한 시간이 이어졌다. 여러 번 일본을 다녀온 사람은 가이드의 설명에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의 숟가락을 얹는 재미를 느꼈고, 처음 온 사람들은 새로 알게 된 사실에 흥미와 재미를 느꼈다. 역사 얘기는 후손들에게 존경심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갖게 하는데, 일본에 와서 일본인 아내와 자식을 두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우리나라”라는 말로 한국인임을 잊지 않으려는 가이드의 역사 얘기에, ‘우리나라’에 실리는 그의 마음이 애국인 듯 원망인 듯하여 나는 괜히 울컥해지기도 하고 예민해지기도 했다.

다행히도 날씨도 장소도 음식도 좋았다. 무엇보다 함께 한 마음 맞는 친구들은 최고의 옵션이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여행이 끝나며 몇 달간의 내 마음고생도 함께 끝이 났다. 내 선택으로 지게 된 무거운 책임의 짐을 벗으며, 그 짐을 기꺼이 함께 져 준 인연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이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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