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내란 프레임’ 씌우기 고질화
위헌 논란에도 전담재판부 강행
윤 무죄 선고 막기 위한 무리수
정치평론가
12·3 비상계엄령 사태 초기만 해도 대통령이 헌법에 규정된 권한을 사용한 게 과연 ‘내란’에 해당하는지 논쟁이 일었다. 계엄 선포가 오판에 따른 잘못된 선택이었다 쳐도 그게 곧 형법상 내란죄 성립 요건은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꽤 많았다. 지금도 법리적으론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이 재판받는 내란 사건은 ‘혐의’이지 법원에서 확정판결 받은 건 아직 없다. 엄밀히 따지면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야 하므로 기소된 사람들을 ‘내란 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부당하다.
그러나 그건 법률적 수사일 뿐이고 정치적으론 이미 ‘내란 프레임’이 완성됐다. 여론전에 탁월한 좌파의 정치 논리가 우파의 법리를 완벽하게 깨버린 결과다. 지금은 대통령부터 여당 국회의원, 언론까지 ‘비상계엄령=내란’을 기정사실로 언급함에도 누구 하나 반박하지 못하는 분기기가 됐다.
민주당 안에 설치된 각종 특위는 물론이고 여권이 국회에서 통과시킨 특검 명칭에도 일제히 ‘내란’이 들어갔다. 나아가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국민의힘을 ‘내란 정당’으로 규정하고 우리나라엔 야당이 없다고 주장한다. 어느 분야, 계층을 막론하고 전임 윤석열 정부에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목소리를 내면 ‘내란동조 세력’이라고 좌표를 찍는다. 좌파 스피커들은 TV 시사 토론에서 우파 패널에게 논리가 밀리면 다짜고짜 ‘내란’을 꺼내 화두를 돌린다.
국민이 TV 생중계로 지켜본 지난 1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김민석 총리에게 이재명 대통령의 ‘저신용자 금리인하’ 발언을 문제 삼으며 정부 입장을 캐물었다. 공방을 벌이던 중 김 총리는 돌연 “내란을 일으켰던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했던 나 의원은~”이라고 전제한 뒤 말을 이어가려 했다. 그러자 나 의원은 “지금 또 내란 얘기하느냐. 내란이 만병통치약이냐. 내란 종식 외치면 국민이 다 익스큐즈(양해) 해 주는 것 같으냐”라고 쏘아붙였다.
국회에서 민생을 논의하면서도 뜻이 안 맞는다 싶으면 “내란 세력이 어딜 감히”라는 식으로 무시하고 짓밟으려 한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조금씩 정리되는 게 아니라 더 장기화, 고질화할 조짐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내란 프레임 설치에 성공한 세력에서 계속 만병통치약으로 써먹을 태세인 까닭이다. 최근 민주당이 발의한 특별재판부와 전담재판부 설치 법안 명칭 앞에도 ‘내란’이 붙었다.
여권은 국회(입법부)가 재판부(사법부) 구성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안이 위헌 논란에 휩싸이니 내란전담재판부를 꾸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전담재판부 구성엔 국회가 빠지는 대신 법무부(행정부)가 들어가므로 위헌 소지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전담재판부는 내란 혐의 피고인의 법정 형랑을 감경할 수 없도록 했다. 가령 윤 전 대통령의 혐의(내란 우두머리)는 법정 형량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 무기 금고형이다. 기존 법원이면 재판부가 형량을 징역 10년 정도로 감경할 수 있으나 전담재판부에 대해선 그런 재량권을 없앴다.
이 때문에 여권이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굳이 전담재판부를 설치하려는 목적이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돈다. 이는 역으로 해석하면 기존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재판장 지귀연)에 그대로 맡겨두면 무죄가 선고될지도 모르니 판결의 주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되는 셈이다. 지귀연 재판부가 1심이긴 해도 윤 전 대통령에게 무죄를 선고하면 여권은 만병통치약을 잃게 된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려는 것이란 의심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그런 목적이 아니라면 사법 체계를 흔들지 말고 법관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
송국건 정치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