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 구마모토 공항의 체류형 게이트 라운지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한참을 보낸 적이 있다. 공주 옷을 입은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여자애가 앙증맞은 손으로 게임기에 동전을 넣고 자기를 닮은 예쁜 인형을 하나 꺼내고 있었다. 젊은 부부는 그런 일이 익숙한 듯 멀찍하니 서서 보고만 있었다.
내 눈에는 수백 대나 되어 보이는 게임기 중에서 하나를 찾고 거기서 인형을 뽑아가는 행동이 참으로 대단하게도 보였고 한편으로는 ‘벌써?’라는 느낌도 있었다. 알아보니 32평인 그 대기실에는 서른한 개의 게임기, 특히 크레인이 있는 인형 뽑기 게임기는 스물일곱 개나 된다고 했다.
보안 검색대를 지난 탑승객들이 특산 기념품과 봉제 인형, 혹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심지어 과자류까지 뽑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한 번 플레이에 대개 백 엔, 어림잡아 우리 돈 천 원이니, 나라는 달라도 게임비는 비슷한 모양이다. 사람들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아, 탄성과 원성을 지르며 웃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면서 손에 쥔 인형을 뽐내기도 하는, 그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이 모든 장면이 떠오른 것은 “우리 인생은 인형 뽑기가 아니다.”라는 어느 분의 말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뽑기 게임조차 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대개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인형 뽑기의 첫 경험을 가졌다는데, 나는 그런 게임을 할 만큼 넉넉한 용돈을 받지도 못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성당 정문을 거쳐 학교로 들어가서, 뽑기가 설치된 문방구를 지나치지도 못했었다. 그러니 90년대의 전성기를 지나 한번 저물기도 했던 인형 뽑기가 요즈음 다시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심지어 비싼 공항에까지 게임센터를 들인 배경도 알고 싶었다. 체험이 어려울 땐 늘 그래왔듯이 이론으로 접근해볼 수밖에.
인형 뽑기가 유행할 수 있는 여건부터 알아보았다.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이었다. 아케이드형으로 개발된 우리나라와 일본의 상권에서는 노래방이나 뽑기방 등의 시설이 들어서기 쉬우며,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무인 점포까지 고려하면, 친구나 애인과 함께 짧은 시간을 보내기 좋은 놀이터, 접근성과 가성비를 다 갖춘 놀이터가 바로 자신 곁에 있는 셈이다.
사실 인형 뽑기는 랜덤의 운에 성공을 거는 일반 뽑기와 차이가 있으며, 복권 같은 확률 게임과도 다르다. 인형 뽑기에는 물리적 조작이라는 기술요소가 들어있다. 집게의 강도를 인식하고, 경품 배치를 고려하여 각도를 조절하고 조작하는 개인의 기술요소가, 게임기에 설치된 집게의 성질이라는 우연을 만나, 그 조합이 잘 맞았을 때만 성공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우리의 인생처럼.
그러다 보니, 자신이 점찍은 인형을 뽑기 위해 도전하고, 성취감으로 열광하고, 연속적인 실패 후에 성공에 이르면 마치 대단한 일을 이룬 듯 카타르시스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술과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게임은 디자인된다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참여를 지속시키기 위해 “변동비율 강화”라는 보상 설계를 쓴다는 점이다. 즉 귀한 아이템이 몇 번 만에 나올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성을 주입하여 참여자로 하여금 더 몰입하게 하고 중독되게 하여 낭비를 부른다는 것이다.
우리 삶도 시행착오의 연속이긴 하지만 누구의 디자인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실패할 때마다 천 원을 걸고 될 때까지 해보겠다고 오기를 부릴 수도 없지 않나? 인형 뽑기와의 인연 없음은 어릴 적이나 어른이 되어서나 마찬가지일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