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함께하던 독서대, 역에서 분실
분실물센터 상담원 통화 통해 발견
철저·완벽한 철도시스템 덕 되찾아

김정숙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김정숙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의 철도시스템은 완벽하다고들 한다.

나는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 머리에 부족한 것을 손에라도 들고 있어야 위안이 된다고 변명해가면서 한결같이 책을 들고 나선다. 그리곤 어디든 잠시라도 앉게 되면 책을 펴든다. 약속장소에 좀 늦겠다고 양해를 구해 오는 사람에게 책이 있으니까 ‘넉넉히’ 늦어도 된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지난 18일, 서울 동부 끝단으로 강의를 하러 갔다. 2시간이나 되는 열차 여행은 물론 완벽한 ‘독서실 입장’이다. 이때 휴대용 독서대는 친한 동행이다. 그날도 이십 년 가까이 사용한 작은 독서대를 펼쳐놓고 책을 읽다가 SRT 수서역에서 내렸다. 강의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밤 10시 40분에서야 다시 기차에 탑승했다. 책을 꺼내 들었는데, 독서대가 보이지 않았다.

행사를 주관한 분들께 드릴 책도 챙기는 등 가방이 좀 복잡하기는 했지만, 독서대가 빠져나간 순간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날은 새벽에 도착했기 때문에 아침에서야 독서대를 새로 하나 마련하려고 인터넷으로 검색했는데 똑같은 물건이 없었다. 하루를 지내면서 내내 아수했다. 다시 다음날 책을 종이가방에 담아 선물한 기자한테 가방 안에 들어있지 않냐고 묻기도 했다.

결국, 하차한 수서역 분실물센터로 전화했다. 좌석 번호, 기차 번호, 열차 시간, 승하차 장소와 시간 등을 소상히 알리고 습득물에 대한 문의를 했다. 센터에서는 살펴보겠다고 하더니, 얼마 후에 ‘파우치’ 한 개 외에 다른 물건은 없다고 했다. 순간, 독서대 주머니를 파우치라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파우치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독서대는 주머니에 들어있다고 했다. 재질은 헝겊은 아니고 비닐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초록색 물질이었다.

독서대는 접이식이어서 때로는 가방 속에서 책갈피하고 서로 끝이 섞이기 때문에 주머니를 만들었다. 동양화를 할 때 화선지 밑에 까는 천으로 예전에는 군용 담요가 가장 완벽한 받침이었으나 요즘은 동양화용 멍석 고무 깔판을 판매한다. 이 멍석은 휴대할 수 있도록 카키색 주머니에 들어 있는데, 그 주머니가 독서대 크기와 적당히 맞았고 길이만 조정하면 되었다. 그걸 반으로 잘라 꿰매어 나름 근사한 독서대 주머니를 만들었었다. 이것을 파우치로 등록할 수 있구나 싶었다. 아마 상담원과 통화하지 않고 습득물 목록만 인터넷으로 검색했다면, 독서대가 아니고 파우치라고 되어 있어 찾지 못할 뻔했다. 분실물과 습득물 명칭이 다를 수 있음도 깨달았다.

주머니 설명을 듣던 상담원은, “와 있는 것 같아요”라며 언제 찾으러 오겠냐고 했다. 순간, 반가움과 난감함이 교차했다. 수서까지는 시간도 내야하고, 또 차비가 독서대값보다 더 들 수도 있다. 대구에 산다는 이야기를 듣던 상담원은 동대구역으로 보내면 역에서 찾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다음날 찾으러 가면 가능한지 확인했다.

내가 수서역에 전화한 때가 오전 10쯤이었다. 그런데 그날 12시 50분쯤에 동대구역 분실물센터에서 문자가 왔다. 신분증을 지참하고 와서 분실물을 찾아가라며, 다른 사람이 올 때는 위임장과 신분증 복사본을 가지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근무한단다.

동대구역에서 빵 한 상자를 사 들고 분실물센터에 갔다. 금방 물건을 내주며, 빵은 극구 사양했다. 나는 철저한 철도시스템이 반가와서라고 했다. 작은 물건이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돌아오는 우리 사회가 자랑스러웠다. 동시에 지난날 작은 물건이라고 또 누가 가져갔겠지라는 섣부른 판단하에, 역에서 잃은 물건을 적극 찾지 않았음도 반성했다.

김정숙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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